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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위관 홍중하가 울릉도를 그냥 두면 왜인들이 살게 될 것이니 명확히 할 것을 주장하다.
접위관 홍중하(洪重夏)가 하직 인사를 하고, 좌의정 목내선(睦來善), 우의정 민암(閔黯)이 홍중하와 함께 청대하였다. 홍중하가 아뢰기를,
“왜인이 이른바 죽도(竹島)는 바로 우리나라의 울릉도(鬱陵島)입니다. 지금 상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버린다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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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 울릉도에서 고기잡는 우리나라 백성들을 금하게 해 줄 것을 요청하다.
계유년 봄에 울산(蔚山)의 고기잡이 40여 명이 울릉도(鬱陵島)에 배를 대었는데, 왜인의 배가 마침 이르러, 박어둔(朴於屯)·안용복(安龍福) 2인을 꾀어내 잡아서 가버렸다. 그 해 겨울에 대마도에서 정관 귤진중(橘眞重)으로 하여금 박어둔 등을 거느려 보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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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만이 울릉도에 관한 일을 아뢰어, 접위관을 보내 맞바로 회빈작주하는 짓을 책망하게 하다.
당초에 남구만(南九萬)이 울릉도(鬱陵島)에 관한 일로 임금에게 아뢰어, 접위관을 보내 맞바로 회빈작주(回賓作主)회빈작주(回賓作主)맡아보는 사람을 제쳐놓고 제멋대로 일을 체잡거나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방자하게 구는 것.하는 짓을 책망하게 하기로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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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간 이수언이 근래에 어민들이 울릉도에 왕래하니 엄중히 방비할 것을 상소하다.
대사간 이수언(李秀彦)이 응지하여 상소하기를,
“…… 신이 일찍이 영남을 안찰하였을 적에 좌도의 바닷가를 순찰해 보았는데, 축산포(丑山浦) · 포이포(包伊浦) · 율포(栗浦)의 구진들이 영해(寧海) · 영덕(盈德) · 흥해(興海) 등의 지경에 있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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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왜 귤진중이 공차의 파견문제, 울릉도에 대한 문제 등을 다시 전달하여 오다.
지난해에 접위관 유집일(兪集一)이 조정에 돌아왔는데, 차왜 귤진중(橘眞重)이 오히려 제2서(第二書)의 회답을 요구하자, 남구만이 말하기를,
“교활한 왜의 정상이 절통하다. 어찌 또 그 제2서에 답서를 보낼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두 서신의 내용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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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 등이 울릉도에 가서 일본국 백기주로 들어가 왜인과 송사한 뒤 돌아오다.
동래 사람 안용복(安龍福)·흥해(興海) 사람 유일부(劉日夫)·영해(寧海) 사람 유봉석(劉奉石)·평산포(平山浦) 사람 이인성(李仁成)·낙안(樂安) 사람 김성길(金成吉)과 순천(順天) 중[僧] 뇌헌(雷憲)·승담(勝淡)·연습(連習)·영률(靈律)·단책(丹責)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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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이 울릉도와 자산도에 가서 왜인들을 쫓아냈음을 말하다.
비변사에서 안용복(安龍福) 등을 추문하였는데, 안용복이 말하기를,
“저는 본디 동래에 사는데, 어미를 보러 울산(蔚山)에 갔다가 마침 중 뇌헌(雷憲) 등을 만나서 근년에 울릉도(鬱陵島)에 왕래한 일을 자세히 말하고, 또 그 섬에 해물이 많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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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지선이 안용복이 일본에 다녀온 문제에 대해 대마도에 알리는 방책에 대해 말하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좌의정 윤지선(尹趾善)이 말하기를,
“안용복(安龍福)의 일을 외방에 있는 대신에게 물었더니, 영돈녕 윤지완(尹趾完)은 말하기를, ‘안용복은 사사로이 다른 나라에 가서 외람되게 나라의 일을 말하였는데, 그가 혹 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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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 유집일이 안용복을 다시 핵사하여 실정을 알아낸 뒤에 죄를 논하도록 아뢰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 승지 유집일(兪集一)이 말하기를,
“신이 근년 동래에 봉사하였을 때에 안용복(安龍福)을 추문하였더니, 말하기를, ‘백기주(伯耆州)에서 준 은화와 문서를 대마도 사람이 겁탈하였다.’ 하였는데, 이번 그가 백기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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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이 주비가 울릉도가 이미 왜지가 되었다고 말한 것을 공사에 이르다.
…… 조석(曹錫)은 공사에 이르기를,
“홍기주(洪箕疇)가 와서 주비(朱奜)에게 불측한 마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광은군(光恩君)과 신대장(申大將)이 그로 하여금 탐문하도록 하였다고 하므로, 정말 주비를 불렀으며, 홍기주가 주비와 같이 별처에서 이틀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