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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판관 이홍업이 왕자 및 적장의 편지를 가지고 오다.
경성판관(鏡城判官) 이홍업(李弘業)이 오랫동안 적에게 잡혀 있다가 북병사 한극함(韓克諴), 남병사 이영(李瑛), 임해군 이진(李珒), 순화군 이보(李⿰王土), 상락부원군 김귀영(金貴榮), 장계부원군 황정욱(黃廷彧), 전호군 황혁(黃赫)의 서장과 적장 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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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가 이홍업을 추고한 결과를 보고하다.
의금부가 아뢰었다.
“전교하신 내용으로 다시 이홍업(李弘業)에게 물었더니 ‘신은 7월 24일 경성(鏡城)에서 사로잡혔는데 왕자도 7월 24일 회령부(會寧府)에서 사로잡혔다고 하였다. 날짜는 기억되지 않는데 9월 초승에 적장 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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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독이 파주에 진주했다가 벽제에서 왜적에게 대패한 상황을 기록하다.
앞서 이제독(李提督)은 평양(平壤)을 탈환하고는 승승장구하여 정월 초열흘날 밤에 개성부에 들어왔다. 본부의 사족과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은 100냥과 쌀 100석을 내어 장세작(張世爵)을 시켜 나누어주어 진휼하게 하고, 패로써 유정(劉綎)의 군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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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순찰사 홍세공이 왜적이 두 왕자를 데리고 함흥부로 향했다고 치계하다.
함경도순찰사 홍세공(洪世恭)이 치계하였다.
“포로가 된 영부사 김귀영(金貴榮)의 첩자 김천(金闡)과 임해군 이진(李珒)의 종인 돌모치(乭毛赤) 등이 이달 26일 도망해 진영에 도착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을 자세히 물어보니 ‘적은 중국군이 평양을 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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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왜적들이 약속을 어기면 장기고가 섬멸할 것이라고 치계하다.
윤근수(尹根壽)가 또 치계 하였다.
“어젯밤에 신이 군사에 대해 기고(旗鼓) 장구경(張九經)에게 물으니, 장기고가 ‘노야(老爺)께서는 필경 당신네 나랏일을 마친 뒤에야 철병할 것이다. 오늘 출발한 심사현(沈思賢) 등 다섯 관원은 사간배패(四竿陪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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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원이 의주에서 돌아와 송경략이 왜적과 강화하는 일에 대해 논의한 일을 아뢰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이 의주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신이 의주에 도착해서 자세히 듣건대, 요사이 송경략(宋經略)이 진병하자는 우리의 요청을 듣기 싫어해서 심지어는 말하기 미안한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신이 지난번에 장기고(張旗鼓)를 보고 진병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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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의주에서 오자 중국의 강화와 송경략의 학문에 대해 논의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의주에서 왔다. 상이 인견하고 이르기를,
“저들이 강화하려 하니 내 마음이 매우 안타깝다. 직접 가서 하소연하려고 하였으나 지금 서장을 보니 냉랭하게 대할 것 같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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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감사 이원익이 송시랑이 왜적과 교전하지 말라고 했다고 치계하다.
평안도관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치계 하였다.
“심유격(沈遊轚)이 강화 문제를 가지고 송시랑(宋侍郞)에게 아뢰니 즉시 준허하고 칠간기호를 보내되, 절반은 왜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중국 장수에게 주어서 중국군에게는 왜적을 죽이지 말 것을 명하고 우리 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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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수를 접견하고 중국군이 철병하게 된 사정 등을 이야기하다.
상이 남별궁에 거둥하여 총병 낙상지(駱尙志), 유격 오유충(吳惟忠)·왕필적(王必迪)·호상충(胡尙忠)·곡수(谷燧)·갈봉하(葛蓬夏) 등 여섯 장수를 접견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추류들이 바닷가에 둔취해 있으면서 돌아가지 않고 있는데 대인들이 이제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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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화친 요구는 머지않아 침범하려는 의도이므로 방어를 강화하도록 명하다.
전교하였다.
“흉적이 장차 침범하려면 반드시 먼저 화친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이미 경험한 사실로서 허의후(許議後)의【중국 사람으로서 일찍이 왜에 포로로 잡혀 일본에 있으면서 중국에 글을 올렸다.】글 가운데에도 이 말이 있는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