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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에서 경상우도의 염창을 옳기는 일에 대해 보고하다.
공조에서 아뢰기를,
“이번에 경상우도(慶尙右道)의 염창(鹽倉)을 옮겨서 배치하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를 현지에 찾아가서 물어 보았더니, 곤남군(昆南郡) 사람들은 성내에 두고 태장관(汰場官)에 합속시켜서 양쪽을 겸임하게 하기를 바라고,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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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순등이 전곶을 금표 안에 두는 일로 백성이 불편하다고 아뢰다.
전곶(箭串)을 금표(金標) 안에 들이는 일을 의논하도록 하였다. 영의정 유순, 좌의정 허침, 우의정 박숭질이 아뢰기를,
“전곶을 금표 안에 들이는 것은 성상의 뜻이 지당하십니다. 다만 도성의 서북이 모두 금표 안에 들이고 지금 또 동쪽 길을 막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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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에 배와 뱃사공을 더 두게 하다.
전에 병조가 ‘왜노에게 화의(和議)를 허락한 뒤에 국경의 수비가 허소해질까 염려되어 경상·전라 양도의 변장에게 방비하는 방책을 힘써 조치하라.’ 고 유시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유계종(柳繼宗)이 치계하기를,
“거제도(巨濟島)·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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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과 이순신이 한산도 ․ 당포에서 승전한 일에 대해 기록하다.
이때 동래가 이미 함락되어 왜적들이 계속 몰아쳐 곧장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대가가 이미 서로로 들어가자 황해도 이남에서 동래까지 오직 패전 소식만 들려오고 전혀 다른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은 전라좌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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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경성수복 때에 도체찰사의 지휘를 받도록 장수들에게 하서하라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들으니 ‘고언백(高彦伯)과 이빈(李薲)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최전방에 있고 전라감사는 고양(高陽) 해포(醢浦)에 머물고, 충청감사 허욱(許頊)과 수사 정걸(丁傑), 건의부장(建義副將) 조대곤(曺大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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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독에게 화첩을 보내다.
회첩은 다음과 같다.
“장군이 누선의 군사로 왜적을 노량(露梁)에서 막고 여러 장수에 앞장서서 용기를 내어 곧바로 나아가 왜선을 부수고 무수한 왜적을 죽이니, 사나운 기운이 깨끗이 사라지고 위엄이 멀리까지 퍼졌습니다. 대저 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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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에 형군문의 관사에 나아가다.
미시에 상이 형군문(邢軍門)의【형개(邢玠)】관사에 나아갔다. 상이 말하기를,
“3로의 왜적이 일시에 도망갔고 진대인(陳大人)이 해상에서 대첩하였으니 황은이 망극하고 또한 여러 대인의 공로입니다. 몸에 병이 있어서 즉시 찾아와 치하하지 못하여 황공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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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덕형이 수군의 활약상에 관한 치계를 올리다.
좌의정 이덕형(李德馨)이 치계하였다.
“금월 19일 사천(泗川)·남해(南海)·고성(固城)에 있던 왜적의 배 3백여 척이 합세하여 노량도(露梁島)에 도착하자,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수군을 거느리고 곧바로 나아가 맞이해 싸우고 중국 군사도 합세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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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이순신의 사당을 세울 것을 요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순신(李舜臣)이 지난날 한산도에서 승첩을 거두어 큰 공을 세웠고, 주사(舟師)가 패몰된 뒤에는 잔파된 나머지를 수습하여 기계와 군량을 전날과 다름없이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노량(露梁) 해상에서 밤새워 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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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독이 이순신의 후임에 관한 게첩을 보내다.
진제독(陳提督)이【진인(陳璘)】게첩을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적추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주사가 노량(露梁) 앞바다에서 격전할 때를 틈타 종적을 감추고 도망치기에 깃발을 돌려 추격하였으나 이미 대양으로 멀리 떠나 잡지 못하였으니 매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