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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순등이 전곶을 금표 안에 두는 일로 백성이 불편하다고 아뢰다.
전곶(箭串)을 금표(金標) 안에 들이는 일을 의논하도록 하였다. 영의정 유순, 좌의정 허침, 우의정 박숭질이 아뢰기를,
“전곶을 금표 안에 들이는 것은 성상의 뜻이 지당하십니다. 다만 도성의 서북이 모두 금표 안에 들이고 지금 또 동쪽 길을 막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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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한양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능침을 수거(修擧)하고 유민을 진무하는 것이 오늘의 급선무이며 중국 장수를 접대하는 것 또한 막중한 예입니다. 해주는 한 귀퉁이에 치우쳐 있어 양도와의 거리가 매우 멀어서 신인을 위로하고 사방을 호령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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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외가 군량 확보, 왕의 와신상담을 요구하는 자문을 보내 오다.
유원외(劉員外)가 이자하기를,
“보내온 왕의 자문을 보니, 오로지 우리 황국에 충성하고 그대의 선왕에게 효도하여 기업을 보전하려는 뜻이 마치 꺼진 불을 다시 일으키고 마른 나무에 새싹이 돋게 하려는 듯하였습니다. 몸을 돌보지 않고 온갖 고난을 무릅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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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의 동향, 혜성의 변고, 풍수, 환도, 명군의 유병 문제를 의논하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영중추부사 심수경(沈守慶),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병조참판 심충겸(沈忠謙)을 인견하였는데, 동부승지 장운익(張雲翼), 주서 남이신(南以信), 봉교 조수익(趙守翼), 검열 김용(金涌)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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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이제독에게 글을 보낸 일을 공초하다.
정원이 이융(李肜)·이채(李彩) 등에 대한 추안 ……
【이융의 초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신은 일찍이 한양(漢陽)에서 적이 물러간 뒤에 제독이 적과 강화하기만을 생각하고 추격에는 뜻이 없는 것을 보고서 안타까이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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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양천을 침범하고 한양에 들어와서 수백리가 소란하였고 서울이 크게 소동하다.
왜적의 배가 동강과 서강에 모이어 양천(陽川)을 침범하고 드디어 한양에 들어와서 민가에 불을 놓고 백성을 살해 포로하였으므로 그곳 수백리가 소란하였고 서울이 크게 소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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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 최영(崔瑩)은 풍채가 헌걸차고 체력이 남보다 뛰어 났다. 처음에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의 휘하에 있으면서 누차 왜적을 사로잡아 용맹을 떨쳤으므로 달적(達赤)으로 채용되었다. …… 공민왕 6년에 외직으로 나가서 서해(西海), 평양(平壤),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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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와 경상도가 왜의 소굴이 되다.
…… 드디어 서해도로 갔는데 영비와 최영(崔瑩)이 따라 갔다. 문하찬성사 우현보(禹玄寶)에게 명령하여 경성을 유수케 하고 5부의 장정들을 징발하여 군대를 편성하였는데 표면은 해주 백사정(白沙亭)으로 사냥 간다고 하였으나 실은 요동을 진공하려는 것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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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도 안렴사 전리가 왜가 40여 군에 침입하였다고 급보하다.
…… 전라도안렴사 유량(柳亮)이 왜선 80여 척이 와서 진포(鎭浦)에 정박하면서 부근 주와 군에 침입한다고 보고하였다. 신우(辛禑)가 상호군 진여의(陳汝宜)를 전라도와 양광도에 파견하여 병을 핑계하고 북벌에 참가치 않고 자제나 노예를 시켜서 대신 보낸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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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도 안렴사 전리가 왜적이 도내 40여 군을 침범하였다고 보고하다.
양광도안렴사 전리(田理)가 보고하기를,
“왜적이 도내 40여 군을 침범하였는데 지키는 군사의 수가 적고 약하여 사람 없는 지역을 밟는 듯합니다.”
하였다. 이에 원수 도흥(都興)·김주(金湊)·조준(趙浚)·곽선(郭璇)·김종연(金宗衍) 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