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검사 한응인이 평양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순검사(巡檢使)순검사(巡檢使)지방의 군무(軍務)나 백성의 질고(疾苦)를 순행하며 살피기 위하여 파견하던 임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품계가 2품 이상이면 도순검사(都巡檢使), 3품이면 순검사라 일컬었다. 한응인(韓應寅)이 치계 하였다.
“14일 ...
-
김명원이 이일 ․ 이천 등 장수들이 간 곳을 모른다며 전투에 소극적이라고 보고하다.
김명원(金命元)이 치계 하였다.
“병사 이빈(李薲)이 더위를 먹어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또한 다른 장수가 없기 때문에 신의 종사관인 판관 윤안성(尹安性)을 대신 보냅니다. 이일(李鎰) · 이천(李薦) · 김억추(金億秋) · 박석명(朴錫命) 등이 아직...
-
양사가 군율을 잃은 김여율 ․ 이덕남 ․ 김억추 등을 처단하라고 청하다.
양사가 아뢰기를,
“사변이 발생한 뒤로 제장들이 군율을 잃은 탓으로 적세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우선 그 중에 더욱 심한 자를 들어 아뢰겠습니다. 장연현감(長淵縣監) 김여율(金汝嵂)은 5월 18일 임진강 전투에 척후장(斥候將)으...
-
비변사가 군율을 잃은 장수는 우선 공을 세울 기회를 주자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군율을 잃은 장사는 진실로 군법으로 처단한 뒤에야 기율이 밝아지고 군정이 진작될 것입니다. 강동외탄(江東外灘) 및 왕성탄(王城灘)과 임진의 조해랑(照海浪)에서 군율을 잃은 장수에 대하여 인정이 모두 분하게 ...
-
비변사가 군공에 참여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며 3등 이하는 주지 말 것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28일에 마련한 군공의 기록을 보니, 그날 참살한 적은 20여 명에 지나지 않는데 군공에 참여하여 기록된 사람은 3백여 명이나 되니 지나치게 많은 듯합니다. 또 이경준(李慶濬)은 ‘그날 자신은 전장을 ...
-
양사가 허숙 ․ 박석명 ․ 오응정 ․ 이윤덕 등도 종군하여 공을 세우게 하자고 청하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허숙(許淑)을 군율에 따란 조처하는 일은 이미 하명하였습니다. 다만 강탄(江灘)에서 군율을 어긴 제장들, 이를테면 허숙 · 박석명(朴錫命) · 오응정(吳應鼎) · 이윤덕(李潤德) 등은 그 죄가 똑같아서 조금...
-
헌납 구의강이 선산부사 박석명과 거창현감 황삼외를 체차시키도록 아뢰다.
6467. 헌납 구의강이 선산부사 박석명과 거창현감 황삼외를 체차시키도록 아뢰다.
헌납 구의강(具義剛)이【권문 세가에 쫓아다니며 노예처럼 행동하였다. 시류에 영합하여 대각에 올랐으므로 식자들이 모두 타기하며 욕하였다.】...
-
백제후손을 자칭하는 육주목 의홍에게 본관과 토전을 주는 것을 거절하다.
일본 좌경대부(左京大夫) 육주목(六州牧) 의홍(義弘)이 구주를 쳐서 이기고 사자를 보내어 방물을 바치고, 또 그 공적을 말하였다. 임금이 의홍에게 토전(土田)을 하사하고자 하다가,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 권근(權近)과 간관의 의논으로 그만두었다. 의홍이...
-
병선을 만든 정지의 후손을 서용하라고 명하다.
전조(前朝)의 장수(將帥) 정지(鄭地)의 후손을 서용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박석명(朴錫命) 등과 더불어 전조 말년에 왜구가 침략하여 인민이 생업을 잃었던 것을 논하다가, 인하여 말하기를,
“그때 장수 정지가 처음으로 병선을 만들어서 백성에게 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