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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한응인이 경기수사 홍치무의 파직을 청하다.
지평 한응인(韓應寅)이 …… 사헌부의 뜻으로 아뢰기를,
“경기수사 홍치무(洪致武)는 나이가 늙었는데도 이득을 경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선을 만든다고 빙자하여 각 포구에 여러 해 동안 밀린 궐군가포(闕軍價布)를 한꺼번에 모두 징수했습니다. 이른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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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명을 정벌하기 위해 길을 내달라고 요구한 일로 주청사 한응인 등을 명나라에 보내다.
주청사 한응인(韓應寅), 서장관 신경진(辛慶晋), 질정관 오억령(吳億齡) 등이 출발하였다. 이보다 먼저 일본국사신 현소(玄蘇) 등이 와서 ‘명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조선에서 길을 인도해 달라.’ 고 하였다. 이 때문에 상이 조정 신하들과 의논하여 성절사 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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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을 주장한 영상 이산해를 삭탈 관직하는 일을 논의하다.
영의정 이산해(李山海)를 삭탈관직 하였다. 양사가 제일 먼저 파천을 주장한 이산해를 논핵하여 멀리 찬출시키기를 청했다. 육승지와 어가를 호종한 신하들을 부청에서 인견하였는데 모두의 의논들이 파천의 실수를 공격하고 그 계획이 이산해로부터 나왔다고 하여 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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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원을 좌의정, 윤두수를 우의정에 제수하다.
최흥원(崔興源)을 좌의정에, 윤두수(尹斗壽)를 우의정에 제수하여 인견하였다.
윤두수가 입대하여 사면할 것을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러한 비상시에 사피할 수 없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
하였다. 두수가 아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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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예부에 적이 서울에 있어 방물을 가져갈 수 없다고 전하다.
상이 이른 새벽에 보산(寶山)을 떠났다. 비를 맞으면서 안성을 지나 용천에서 주정하고 해질녘에 봉산(鳳山)에 닿았다. 이날 140리를 달렸다. 상이 용천현 대청으로 나아가 좌의정 최흥원(崔興源), 우의정 윤두수(尹斗壽), 좌참찬 한응인(韓應寅), 예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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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원과 윤두수를 인견하고 지방군의 징병, 병사의 제수 등을 논의하다.
최흥원(崔興源)과 윤두수(尹斗壽)를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은 유홍(兪泓)의 상소를 보았는가? 개성을 떠나게 한 것이 내가 한 것인가?”
하였다. 흥원이 아뢰기를,
“적병이 입성한 지가 3일이 되었는데 아직 싸움이 있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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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관 민종신 등을 인견하고 징병 상황, 적의 형세 등을 묻다.
상이 선전관 민종신(閔宗信), 승지 노직(盧稷), 주서(注書) 박정현(朴鼎賢), 가주서(仮注書) 한우신(韓禹臣), 검열 김선여(金善餘)·김의원(金義元) 등을 인견하였다. 상이 종신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들은 것을 다 말하라. 징병은 어떻게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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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찰사 한응인 등을 인견하고 병력의 상황을 묻다.
도순찰사 한응인(韓應寅), 승지 노직(盧稷), 주서 박정현(朴鼎賢), 가주서 한우신(韓禹臣), 검열 김선여(金善餘)·김의원(金義元) 등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이 거느린 군졸은 얼마나 되는가?”
하니, 응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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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당이 급제 이산해의 정죄를 청하고 강변에서 징발한 토병을 임진강에 보내다.
홍문관 부제학【홍인상(洪鱗祥)과 부응교 윤담무(尹覃茂)이다.】등이 아뢰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급제 이산해(李山海)는 오랫동안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국사를 염려하지 않고 오직 아부와 아첨으로 몸을 보존할 계획만 하였으며 벼슬자리를 지키겠다는 일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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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임진강 수비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은 요즘 처사가 매우 사람들의 마음에 흡족하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성이 함락된 지 이미 오래인데 진격할 마음은 없고 오로지 물러앉아 나루터를 지키는 일을 상책으로 삼고 있으므로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