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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납 서종태가 전에 왜의 서계를 누설한 일로 인해 체직되다.
헌납 서종태(徐宗泰)가 전에 헌부에 있을 때 동료와 의논하여 김환(金煥)에 대한 논계를 멈추려 하였는데, 이제 와서 본원에서 다시 이것을 논계하나 소견을 바꿀 수 없으므로 논박당하였고, 또 왜의 서계를 누설한 잘못이 있다 하여 인피하였는데,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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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의 신하들이 왜의 서계를 누설한 일로 서로 잇달아 인피하여 갈리다.
양사의 신하들이 왜의 서계를 누설한 일 때문에 서로 잇달아 인피하여 갈렸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언 박세준(朴世⿰火雋)이 와서 인피하기를,
“기밀 문서를 신이 가장 먼저 듣고서 써 두었고 무릇 와서 묻고 보기를 바라는 자가 있으면 누구에게나 내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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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상운이 동래의 공작미를 원래대로 면포를 지급하도록 아뢰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였다.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이 말하기를,
“동래의 공작미는 공무하는 면포의 대가로 대마도에다 바꾸어 지급하는 것입니다. 유심(柳淰)이 부사가 되었을 때에 임시로 쌀과 바꾸도록 허락한 것이 마침내 잘못된 전례가 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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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가 부산성을 새로 임명된 첨사에게 수축하도록 해야 한다고 아뢰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임금이 묻기를,
“전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상소하여 진달한 금정산성의 일을 아직도 회계하지 않았는가?”
하니, 좌의정 이여(李畬)가 말하기를,
“이 일은 의논이 한결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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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서종태가 차왜가 예물과 예폐를 감해야 한다고 한 까닭에 대해 힐문하도록 아뢰다.
대신과 비국 제신을 인견하였다. 좌의정 서종태(徐宗泰)가 이르기를,
“차왜가 말하길, ‘집정을 예조 참판과 대등한 예로 대우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니, 예물을 감할 것을 청하고, 관백(關白)의 저군을 아직 정봉하지 않았으니 또한 예폐를 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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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참판 김진규가 관백의 저자에게 예단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 아뢰다.
좌의정 서종태(徐宗泰)·병조판서 최석항(崔錫恒)·예조참판 김진규(金鎭圭)가 청대하여 입시하였다. 서종태가 위원군(渭原郡)의 범월인을 조사하는 일로써 아뢰기를,
“저들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위임하지 않고서 차관을 보내어 같이 조사하자고 하는 것은 범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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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대차왜에게 저군과 집정에게 예단을 감제한 이유에 대해 힐문하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일전에 대마도 대차왜가 나왔으므로, 동래부에서 그들의 저군과 집정에게 예단을 감제하기를 청한 연유를 힐문하였더니, 대차왜가 말하기를,
“예조참판이 글과 예물을 강호 집정에게 보낸 것은 당초의 약조가 아니고, 귀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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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대신들과 왜국에 예단을 보내는 것, 언천대에게 도서를 허급하는 것 등을 의논하게 하다.
특명으로 대신과 비국의 제신에게 와서 모이도록 하고, 이어 인견하였다.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좌의정 김창집(金昌集)은 모두 왜국 예단은 정지하고 보내지 않는 것이 옳다고 이르고, 제신 이언강(李彦綱)·윤덕준(尹德駿)·김석연(金錫衍)·윤지인(尹趾仁)도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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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왕호복고 요청에 대해 대신들과 의논하였는데, 국서를 고치어 보내도록 하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니, 영의정 서종태(徐宗泰)가 왜인의 서계 중에 왕호를 복구하기를 청한 일을 가지고 아뢰기를,
“국왕으로 썼던 것이 이미 구식이었으니, 예전 것을 따라서 개서하기를 청한 것은 참람한 호칭은 아니며, 또 만서(嫚書)와도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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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조태억 등이 어휘를 범한 일본 국왕의 답서 등에 대해 치계하다.
통신사 조태억(趙泰億) 등이 11월 20일에 강호(江戶)에 있으면서 치계하기를,
“신 등이 지난달 18일에 강호에 도착하여 21일에 연향례를 행하였고, 이달 초1일에 전명례를 행하였고, 초3일에는 내정에서 음악을 베풀면서 신 등 일행으로 하여금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