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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회답사가 돌아온 것을 중국에 주문하자고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회답사 여유길(呂裕吉) 등이 적간관(赤間關)에 이르러 보낸 서장과 일본 관백(關白) 원수충(源秀忠)이 답한 서계의 등본을 보건대 가강(家康)이 평씨(平氏)를 멸망시키고 스스로 임금이 되어서는 셋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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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원에서 회답사가 가져온 서계를 문제삼아 사신들을 탄핵하다.
간원이 아뢰기를,
“회답 사신들이 받아가지고 온 정신(正信)의 서계에 오억령(吳億齡)의 성명을 직서하였고, 포로를 쇄환한 데 대해서는 ‘우리 임금이 원인을 사랑하는 마음’ 이라고 하였고, 또 ‘마땅히 폐방이 너그러이 용서하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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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부에서 집의 유희분과 지평 성시헌의 출사를 요청하고 회답 사신을 탄핵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집의 유희분(柳希奮), 지평 성시헌(成時憲)이 함께 인혐하여 물러갔습니다. 언관의 논사는 확실히 헤아리고 자세히 살펴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니 경솔히 논계하지 않은 것은 처사를 신중하게 하는 데에 있어 나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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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여우길 등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면서 포획되었던 남녀를 쇄환하다.
회답사 여우길(呂祐吉) 등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면서 포로가 되었던 남녀 1,240여 명을 쇄환하였다. 그런데 우길이 가져온 일본 국서에는 전면에 원수충(源秀忠)【가강(家康)의 아들이다.】이라고만 쓰고 국왕을 쓰지 않았으며, 또 예조에 답한 서계에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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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덕천가강이 강화를 요구한 것과 원역을 차임하여 답한 일 등에 대해 아뢰다.
〈평수길(平秀吉)이 죽은 후 덕천가강(德川家康)이 평성(平姓)을 갈아치우고 스스로 국정을 주관하여 풍신수길(豊臣秀吉)이 하던 일을 모두 뒤집었다. 글을 만들어 사신을 파견하여 분묘를 도굴한 왜적을 잡아 보내면서 강화를 간절히 요구하므로, 지난 정미년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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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되었던 승려 육혜가 원수충이 유구국을 습격하여 왕을 사로잡은 것 등을 말하다.
〈포로가 되었던 진주의 승려 육혜(六惠)가 대마도에서 출발하여 두왜 1명, 격왜 7명과 함께 이달 18일에 부산에 도착하니,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가 보낸 것이었다. 의지가 동래부 부산진에 글을 올리니, 대개 귤왜(橘倭)가 지체하며 돌아오지 않는 것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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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왜 귤지정이 관백의 서계를 가지고 와서 수호를 요청하고 사신을 보내주기를 청하다.
대마도의 왜 귤지정(橘智正)이 관백(關白)의 서계를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수호를 요청하고 또 사신을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이에 오윤겸(吳允謙) 등을 회답사로 보내었으며, 인하여 천조에 주문하였다. 그 자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은 왜정에 관계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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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문이 일본이 조선과 우호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상주문이 도착했다는 자문을 보내다.
중국 아문에서 자문을 보내기를,
“흠차정로장군진수요동지방겸비왜통병관우도독(欽差征虜將軍鎭守遼東地方兼備倭統兵官右都督) 이(李)는 왜의 정세에 관한 일로 자문을 보냅니다. 사유를 갖추어 보내온 조선국의 자문에 ‘일본 원수충(源秀忠)이 수뢰(秀賴)를 멸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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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승 현방이 내빙하다.
〈일본에서 중 현방(玄方)이 내빙하였다.【처음에 수길(秀吉)이 죽자 그의 아들 수뢰(秀賴)가 대신 들어섰는데, 그의 신하 가강(家康)이 찬위하고는 수뢰와 싸워 크게 이겨 드디어 관백(關白)이 되었다. 관백이란 바로 대장군이고 국왕은 아니다. 기유년에 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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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정립 등이 복명하여 일본 국왕 원가광이 우리나라에 보낸 복사서를 올리다.
회답사 정립(鄭岦), 부사 강홍중(姜弘重), 종사관 신계영(辛啓榮) 등이 복명하였다. 당초에 정립 등이 일본에 도착하자 일본의 군신들이 매우 후한 예로 대우했는데, 증정하는 물품과 보패를 하나도 받지 않았고, 은화는 모두 도주에게 되돌려주고 돌아왔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