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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8한일관계사연구조선시대 대일(對日) 외교와 무역의 실무를 맡은 사람들은 왜학역관(倭學譯官) 또는 왜어역관(倭語譯官)으로 불린 조선 정부의 일본어 통역관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통역 역할을 넘어 외교와 통상의 전문가로서 활약하였다. 이 글에서는 왜관의 일본인이 작성한 『관수일기(館守日記)』와 그것의 목록집이라 할 수 있는 『분류사고(分類事考)』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기간은 1854년부터 1863년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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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8열상고전연구1687년 9월부터 1870년 윤 10월까지 왜관(倭館)의 일본인 관리자인 관수(館守)가 작성한 일지(日誌)를 가리켜 『관수일기』라 부른다. 이 글에서는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소장된『관수일기』의 개요와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관수일기』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와 무역이 이루어지는 현장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따라서 『관수일기』를 활용한다면 조선 후기 한일관계사의 다양한 측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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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5民族文化硏究왜관(倭館)의 매일기(每日記) 등을 통해서 19세기 초반 대일무역에 참가한 정자범(鄭子範)의 무역 활동이 밝혀졌다. 그의 아버지 정윤중(鄭允中) 역시 왜관을 드나들면서 무역에 참가하였던 동래상고(東萊商賈) 출신이었다. 정자범은 전주와 서울, 부산을 오가면서 우피(牛皮) 등 무역품을 조달하여 왜관에 판매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임 왜학역관(倭學譯官)이 풀지 못했던 공무역(公貿易) 미지급(미수) 문제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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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흥숙2014한일관계사연구조선시대 국경은 여진족을 접하는 두만강 일대, 중국과의 경계인 압록강 일대,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동래부 등을 지칭하였다. 국경 지역 중에 동래부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인 거주지가 관할 구역 내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왜관이라고 불리는 일본인 거주지가 1407년 조성되기 시작한 이래 1876년 근대 개항까지 존속되었다. 더욱이 왜관은 조선 남해안의 세 포구에 각각 있다가 1544년 사량진왜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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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원2012古文書硏究東萊 지역에 세거해온 무임 가문의 하나인 함종 어씨는 양란을 전후해 동래로 이주·정착하여 성장한 유형에 속한다. 이들은 무임가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내부는 우리들의 기대와 달리 매우 복잡하다. 크게 세 가계로 분화된 함종 어씨들은 각기 동래의 입향조인 魚信개의 세 아들로부터 출발하는데 이들 각각의 후손들은 사회 지위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와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저 장남 魚奉仁의 후손들은 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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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민2011한일관계사연구본 논문은 『明治十一年代理公使渡韓始末』과 『明治十二年代理公使朝鮮事務始未』을 이용하여 1878~1879년 사이에 두모진 수세에 대한 처리를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이 벌인 교섭의 내용을 검토한 것이다. 첫째, 1878년 조선정부가 부산의 두모진에서 수세를 실시한 것은 의주부 상인들의 수세에 대한 형평성의 문제제기와 재정확보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조선정부의 수세는 개항 이전 동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