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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9한일관계사연구The fuel such as charcoal or brushwood was necessity like water to Japanese people for their daily life in the Japan House, Waegwan (J, Waka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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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일2017한일관계사연구조선과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1609년의 기유약조로 통교를 재개하였다. 그러나 1868년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부터는 양국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메이지유신은 일본에서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탄생시켰으며, 이에 수반하여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대마번을 매개로 하는 조일관계 역시 대마번이 외교 일선에서 물러나고, 메이지 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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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수2016일본학연구본고는 1695년 1월 23일 이즈모(出雲) 간도군(神門郡) 사기우라(鷺浦)에 표착시 사망한 김옥복(金玉福)의 유해가 함께 표착한 일행과 더불어 조선에 돌아오지 못하고, 약 1년 8개월 뒤인 1696년 9월 18일에서야 송환된 사건에 대해 검토한 것으로 크게 네 단락으로 나누어 김옥복 시신 송환과정을 분석하였다. 첫째 ‘조선에 송환된 표류민 사망자’ 에서는 1695년 1월 23일 이전 일본에 표착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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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5民族文化硏究왜관(倭館)의 매일기(每日記) 등을 통해서 19세기 초반 대일무역에 참가한 정자범(鄭子範)의 무역 활동이 밝혀졌다. 그의 아버지 정윤중(鄭允中) 역시 왜관을 드나들면서 무역에 참가하였던 동래상고(東萊商賈) 출신이었다. 정자범은 전주와 서울, 부산을 오가면서 우피(牛皮) 등 무역품을 조달하여 왜관에 판매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임 왜학역관(倭學譯官)이 풀지 못했던 공무역(公貿易) 미지급(미수) 문제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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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4한일관계사연구이 논문은 거제 주민의 일본 난파선(難破船)구조(救助)에 관한 것이다. 분석에 사용된 자료는 경상도(慶尙道) 거제부(巨濟府) 구조라리[舊助羅里;項里]고문서(古文書)와 일본 자료인 왜관(倭館)의 관수매일기(館守每日記), 외무성기록(外務省記錄) 등이다. 이를 통해서 세 가지 결론을 얻었다. 첫째, 구조라리 고문서에 나타나는 대마도(對馬島) 선박의 해난사고(海難事故)를 조선에 표착한 일본(日本)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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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철2013東北亞歷史論叢Joseon and the Tokugawa Bakufu established equal and official diplomatic relations. These relations were regulated by the Giyu Agreement of 1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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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철2013東北亞歷史論叢근세(조선 후기)의 한일 외교 관계는 敵禮를 기본 원리로 하는 대등하고 공식적인 외교관계였다. 이 외교 관계는 기유약조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조선은 對馬藩을 완충지역으로 통제 하에 두기 위하여 특별한 대우를 허락하여 왜관을 열어주고 세견선을 통한 공작미와 공목을 지급하였다. 왜관은 대마도인을 접대하는 장소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마도에서 보내는 세견선과 비선, 그리고 표류민 송환선 등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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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일2010東北亞歷史論叢Separated by seas, the three countries of Korea, China, and Japan engaged actively in interaction too in the pre-modern period. As maritime acc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