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감사 김신원이 교동 거주인 고언백이 현감 이억창을 구타한 일로써 아뢰다.
    경기감사 김신원(金信元)이 아뢰었다. “교동(喬桐) 거주인 고언백(禍彦伯)이 그 아들 고덕준(高德濬)을 데리고 현감 이억창(李億昌)을 구타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이억창이 수령이 되어 고언백의 집에 가차없이 부역을 부과하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은 것입니…
  • 경상도 관찰사 김신원이 쇄환민과 왜적의 동태에 대해 아뢰다.
    6718. 경상도 관찰사 김신원이 쇄환민과 왜적의 동태에 대해 아뢰다. 경상도 관찰사 김신원(金信元)이 치계하였다. “3월 29일 소선 1척이 동쪽 대양에서 오기에 포획하고 보니, 그 배는 남원(南原)의 교생 강의국…
  • 경상관찰사 김신원이 수륙 양전을 위해 기존 방어책 개선을 장계하다.
    경상도 관찰사 김신원(金信元)이 장계하였다. “지난 번 신의 장계에 ‘도내의 바닷가에 위치한 12고을을 주사(舟師)에 소속시켜 변란을 들으면 즉시 바다로 달려가게 한다는 제도는 진실로 좋다. 다만 평시에는 연해 지방에 백성과 산업이 번성하였으므로, 적병…
  • 일본과의 국교 재개에 대해 김신원이 의논하다.
    김신원(金信元)의 의논은 다음과 같다. “이 일의 전말에 대하여 신은 요즘 그 내용을 다 듣지 못하였으므로 그 사이에 함부로 의논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왜노는 우리의 원수입니다. 임진년 침략해 올 때에 가강(家康)은 비록 한…
  • 읍인 송계록 등이 왜란 때 공적이 있는 강절에게 포상할 것을 청하다.
    〈전 종부시정 강절(姜節)에게 특별히 통정의 계급을 가자하였다. 강절은 회덕인(懷德人)으로 난리 초에 전쟁에 나아가 많은 공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은전이 미치지 못하였었다. 이때에 이르러 읍인 송계록(宋啓祿) 등이 상소하기를, “강절은 왜변이 …
  • 김신원이 병부의 제본에 군사를 철수하지 말라는 명이 전달되었다고 치계하다.
    의주목사 김신원(金信元)이 치계하였다. “6월 22일에 장도사(張都事)가 은밀히 말하기를 ‘병부의 제본에 왜적이 바다를 건너가기 전에는 군사를 철수하여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므로 이미 성지를 받아 송경략(宋經略)에게 이자하였다’ 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