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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병사 성윤문이 왜장의 소행에 관한 치계를 올리다.
경상좌병사 성윤문(成允文)이 치계하기를,
“포로가 되었던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관백이 7월 17일 병으로 죽자 덕천가강(德川家康)이란 대장이 국사를 다스리면서 이곳에 온 왜장들의 처자를 모두 붙잡아 가두고 모반하지 못하게 하고 두세 번 사람을 보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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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강가로 가서 유제독을 맞이하여 위로하고 담소하다.
상이 강가로 나아가 유제독(劉提督)을【유정(劉綎)】 맞이하여 위로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평행장(平行長)은 적의 괴수 가운데에서도 흉악하고 교활한 자입니다. 대인의 병위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패하여 달아나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니, 제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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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조신이 강화를 청하는 글을 보내오다.
6722. 풍신조신이 강화를 청하는 글을 보내오다.
풍신조신(豊臣調信)이 보내온 글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풍신조신은 머리 조아려 조선국 예조 대인 합하께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무술년·기해년·경자년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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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대신들과 국방에 대해 상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대신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병중이었고 날씨가 추워 오랫동안 서로 보지 못했었다. 지금 다른 일은 말할 것이 없고 춘신이 이미 가까워 차츰 바람이 온화해지는데 남쪽을 방비하는 등의 일은 어떻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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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찰사 이덕형이 탈출자에게 들은 일본 상황을 치계하다.
겸사도도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이 치계하였다.
“경상좌병사 이영(李英)의 치보에 ‘중소선 1척으로 포로가 되었던 남녀 40명이 왔는데, 그 중에 사정을 아는 김연상(金連祥)과 김산(金山) 등의 공초가 전일 강사준(姜士俊)의 공초와 거의 비슷하였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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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강화를 청한 문제에 대해 이헌국 ․ 최흥원 ․ 김명원 등이 의논한 바를 아뢰다.
왜적이 강화를 청한 문제로 대신 및 2품 이상의 관원이 의논드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헌국(李憲國)은 의논드리기를,
“난리 뒤에 강화를 청한 것은 일본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 및 평조신(平調信) 등이 수백년 이래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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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편전에 나가 주문하는 일과 강화하는 일에 대해 이원익 ․ 윤승훈 등에게 묻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적의 사신이 강화를 요구해 온 뒤 조정의 의논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허락하지 않으면 그들이 변방을 침략할까 두렵고 허락하자니 중국에 주문할 내용을 만들기가 또한 어려웠다. 그래서 진주사를 이미 차출해 놓고도 주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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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찰사 이덕형이 임진년에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박언황을 올려보내다.
경성 사람 박언황(朴彦璜)이 임진년에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들어갔다가 이때에 이르러 남충원(南忠元)과 함께 나왔다. 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이 그가 적의 정세를 자못 안다고 하여 특별히 올려보냈는데, 언황이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소(玄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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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이 왜인과 강화할 때에 처리 방법 등을 아뢰다.
겸경상등도도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이 아뢰기를,
“귤지정(橘智正)이 다시 온 것은 화의를 재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나라의 모든 사정을 엿보려는 것이니 그를 응접하는 데 있어 진실로 삼가서 하지 않을 수 없고, 의지(義智) · 조신(調信)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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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경상등사도도체찰사 이덕형이 변경의 어려움을 간하다.
겸경상등사도도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이 상차하기를,
“신이 용렬하고 변변치 못하며 그릇은 작고 재능은 부족하온데, 도체찰사의 명을 받은 지 1년이 넘었습니다. 변비(邊備)는 소활한데 수칙할 계책이 없고 군정은 어지러운데 정돈할 방법이 없으며, 군량과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