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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전투 후에 양 총병이 왜적에 대한 정보 부족을 질책했다고 심희수가 보고하다.이에 앞서 부총병 조승훈(祖承訓), 유격장군 사유(史儒)·왕수관(王守官) 등이 평양에 진격하여 17일 동틀 녘에 평양으로 돌격, 성에 포를 쏘고 관을 부수면서 길을 나누어 쳐들어가 몸을 돌보지 않고 전투를 독려하였다. 사유가 사졸보다 앞장서서 천총(千摠) 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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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가 양총병을 만나 왜적에 대한 정보, 조선군의 투항설 등을 해명하다.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아뢰었다. “신이 양총병이 주둔하고 있는 구련성의 촌가에 도착하여 정문하고, 홍수언(洪秀彦)을 시켜 고하게 하기를 ‘과군은 사유격이 힘껏 싸우다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는 오로지 우리나라 때문이어서 놀랍고 애통함을 이기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