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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중국 차인 유괴가 동양정의 패문을 가지고 왔음을 아뢰다.
해평군 윤근수(尹根壽)가 치계 하였다.
“관전보(寬奠堡)의 차인 유괴(劉魁)가 관전참장 동양정(佟養正)의 패문을 가지고 의순관(義順館)에 도착하였는데, 그 패문에는 ‘진수총병 양소훈(楊紹勳)이 양원과 회합하여 이미 병사를 출발시켰으니 앞서 의주로 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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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사 홍세공이 뒤에 온 중국 군대의 기율이 엄하지 않다고 보고하다.
조도사(調度使)조도사(調度使)난리가 났을 때 지방에 파견되어 군량과 물품을 징발하여 수송하는 일을 맡은 임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홍세공(洪世恭)이 치계 하였다.
“광녕유격(廣寧遊擊) 왕수관(王守官)과 원임참장(原任參將) 곽몽징 등은 병사 50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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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전투 후에 양 총병이 왜적에 대한 정보 부족을 질책했다고 심희수가 보고하다.
이에 앞서 부총병 조승훈(祖承訓), 유격장군 사유(史儒)·왕수관(王守官) 등이 평양에 진격하여 17일 동틀 녘에 평양으로 돌격, 성에 포를 쏘고 관을 부수면서 길을 나누어 쳐들어가 몸을 돌보지 않고 전투를 독려하였다. 사유가 사졸보다 앞장서서 천총(千摠) 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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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 당상을 인견하고 양총병 등 중국군의 형편, 요동 파천 등을 논의하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와 비변사 당상을【윤두수(尹斗壽)·한응인(韓應寅)·이항복(李恒福)·이성중(李誠中)·이덕형(李德馨)과 승지 유근(柳根), 주서(注書) 강욱(康昱)·구사맹(具思孟)·신잡(申磼)이 함께 입시하였다.】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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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양덕의 적에 대한 방어, 군량 조달, 중국군의 전력 등을 논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대사헌 이덕형(李德馨), 형조판서 신잡(申磼)을 인견하였는데, 도승지 유근(柳根), 봉교 기자헌(奇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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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우참의 형이 평양성 전투의 패배를 보고하다.
요동우참의(遼東右參議) 형(邢)이 상주하였는데, 그 대략에,
“요동순무(遼東巡撫)의 당보에 ‘부총병조(副總兵祖)가 7월 7일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유격(遊擊) 사유(史儒)와 천총(千摠) 장국충(張國忠)·마세룡(馬世龍) 등이 모두 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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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괄군하는 일, 각도 군사를 체찰하는 일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우찬성 최황(崔滉), 부제학 김응남(金應南),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서천군(西川君) 정곤수(鄭崐壽), 행 이조참판 구사맹(具思孟), 대사헌 이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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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수복 전투의 전모를 기록하다.
처음에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부총병 양원(楊元)을 중협대장으로, 부총병 이여백(李如栢)을 좌익대장으로, 부총병 장세작(張世爵)을 우익대장으로 삼고, 부총병 임자강(任自强)․조승훈(祖承勳)․손수렴(孫守廉)․사대수(査大受)와참장이여매(李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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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수 김명원이제독이 중국군을 단속하고 있다고 보고하다.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치계하였다.
“제독이 여러 장수를 불러 경계하기를 ‘조선이 적에게 피폐 당하였으니 그대들은 술과 밥을 요구하며 폐단을 일으키지 말라. 조선은 예의의 나라이며 명나라를 공경히 섬겨 백성들이 도시락과 음료수를 가지고서 천자의 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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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독이 파주에 진주했다가 벽제에서 왜적에게 대패한 상황을 기록하다.
앞서 이제독(李提督)은 평양(平壤)을 탈환하고는 승승장구하여 정월 초열흘날 밤에 개성부에 들어왔다. 본부의 사족과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은 100냥과 쌀 100석을 내어 장세작(張世爵)을 시켜 나누어주어 진휼하게 하고, 패로써 유정(劉綎)의 군대를 재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