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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에서 중국 조정이 우리 사신을 천대하는 폐를 논하다.
조강에서 정언 권징(權徵)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공사무역으로 짐바리가 너무 많아 중국의 일로가 지쳐서 지탱하지 못하고 중국 조정도 우리 사신을 천대하여 유구 사신만도 못하게 여기니, 이는 대체로 유구는 간략한데 우리나라는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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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과 비변사 당상이 모여 변방의 일을 논하고 권징으로 충청감사를 삼다.
상이 삼공과 비변사당상, 병조당상을 인견하고 변방의 일을 논의하면서, 충청도 역시 전라도와 연접해 있는데 감사 이인(李訒)은 재능이 부족하다 하여 체직시키고 권징(權徵)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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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기에 조헌의 소에 대해 적다.
비망기로 이르기를,
“지금 조헌(趙憲)의 소를 보니, 이는 인요(人妖)라 하늘의 견책이 지극히 깊으니, 두렵고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이 어찌 과인이 현상명경을 지성으로 대우하지 않고 직무를 전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던 소치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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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징이 변장을 이수 환임하지 말 것을 주청하다.
권징(權徵)이 인견하였을 때, 고미평(古未坪)이 분탕될 때 생포한 호녀(胡女) 1명을 그 본토로 환송시킬 것을 주청하였고, 또 마천령(磨天嶺)과 마운령(磨雲嶺)에 관을 설치하여 달아나는 백성을 단속할 것과, 모든 고을 중에서 유휴지를 가려 둔전을 개설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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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새벽에 서울을 떠나다.
새벽에 상이 인정전에 나오니 백관들과 인마 등이 대궐 뜰을 가득 메웠다. 이날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상과 동궁은 말을 타고 중전 등은 뚜껑 있는 교자를 탔었는데 홍제원(洪濟院)에 이르러 비가 심해지자 숙의(淑儀) 이하는 교자를 버리고 말을 탔다. 궁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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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원과 윤두수를 인견하고 지방군의 징병, 병사의 제수 등을 논의하다.
최흥원(崔興源)과 윤두수(尹斗壽)를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은 유홍(兪泓)의 상소를 보았는가? 개성을 떠나게 한 것이 내가 한 것인가?”
하였다. 흥원이 아뢰기를,
“적병이 입성한 지가 3일이 되었는데 아직 싸움이 있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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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원이 이일 등과 임진에 있었는데 5월 18일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패배하다.
이에 앞서 이양원(李陽元)은 이일(李鎰)·신각(申恪)·김우고(金友皐) 등과 함께 대탄에 있었고 한응인(韓應寅)과 김명원(金命元)은 권징(權徵)·신길(申硈)·이빈(李薲)·이천(李薦)·유극량(劉克良)·변기(邊璣) 등과 함께 임진에 있었는데, 5월 18일에 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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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윤선각 ․ 변언수 ․ 권징의 백의종군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왕실의 위태로움이 이처럼 급박한데도 사방이 둘러서서 보기만 사고 손을 써서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뜻은 반드시 조정이 다시 떨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신하로서의 의리는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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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등을 인견하고 평양성의 왜적, 요동 망명 등을 논의하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와 삼도도체찰사 정철(鄭澈)을 인견하였다.【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승지 민준(閔濬), 주서(注書) 강욱(康昱).】상이 이르기를,
“경은 잘 가라. 성공하면 국가의 다행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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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의 처소에서 온 이상의가 동궁의 형편, 각도의 인심 등을 아뢰다.
교리 이상의(李尙毅)가 이천(伊川)의 동궁 처소로부터 왔다. 이상의에게 전교하기를,
“세자는 어떻게 영변(寧邊)으로 올 것인가?”
하니, 상의가 아뢰기를,
“전진하려 하나 적세가 한창 성합니다. 오래 머물 계획은 없으나 언제 올지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