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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에서 김우옹 등이 소민에 대한 구제책을 논하다.
조강이 있었다. …… 강을 마치자 유성룡(柳成龍)과 윤선각(尹先覺)이 모두 민간의 질고(疾苦)에 대하여 아뢰었다. 김우옹(金宇顒)이 아뢰기를,
“소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본디 수령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연유된 것이기는 하나 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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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극지를 경상감사로 삼다.
전교하기를,
“경상감사가 개만 되었으니 당상관으로 합당한 인물을 비변사로 하여금 천거하게 하라.”
하니, 비변사가 백유양(白惟讓)·권극지(權克智)·윤선각(尹先覺)을 천거했는데 권극지를 경상감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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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 심대를 보내 양남의 근왕병을 징발해 오게 하였는데 이르지 않다.
보덕(輔德) 심대(沈岱)를 파견하여 양남의 근왕병을 징발하여 와서 구원하게 하였는데 이르지 않았다. 이때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이 병사들을 이끌고 올라오다가 공주에 이르러 경성이 벌써 함락되고 대가가 서쪽으로 거둥했다는 소문을 듣고 드디어 병사들을 철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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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충청감사 윤선각에게 급히 서울을 수복하도록 하서하기를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충청감사 윤선각(尹先覺)의 장계를 보건대, 왕사를 위해 책려하는 뜻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한결같이 완만하기만 합니다. 충청도를 경기에 비교하면 어디가 경하고 어디가 중합니까? 두 장수만 시켜 병사를 거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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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임진 전투의 패배 상황, 군량의 조달, 각도의 전투 상황을 논의하다.
상이 대신 최흥원(崔興源)·윤두수(尹斗壽), 우찬성 최황(崔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호조판서 한준(韓準), 병조판서 김응남(金應南), 대사헌 이항복(李恒福), 동지 이성중(李誠中), 부제학 심충겸(沈忠謙), 대사간 정곤수(鄭崐壽), 동지 이덕형(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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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의 감사가 수원에 진을 치고 조정의 지휘를 청하다.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睟), 전라도 관찰사 이광(李洸),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尹先覺) 등이 치계 하였다.
“신들이 기병·보병과 6만여 인을 거느리고 이달 3일에 수원에 진을 쳤는데 양천(陽川) 북포(北浦)를 경유하여 군사를 건너려고 합니다. 앞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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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감사 윤선각이 경기에 도착하여 경성을 구원하겠다고 보고하다.
충청도관찰사 겸 순찰사 윤선각(尹先覺)이 치계 하였다.
“신과 병사 신익(申翌), 방어사 이옥(李沃) 등이 근왕병들을 나누어 거느리고서 이달 22일에 온양군(溫陽郡)에서 점열하였습니다. 전일의 하유에 따라 전라도도순찰사 이광(李洸), 경상도도순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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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감사 윤선각이 수원부에서의 전투를 보고하다.
윤선각(尹先覺)이 또 치계 하였다.
“신이 5월 4일에 수원에서 전라도 군사와 길을 나누어 신은 안산을 경유하고 이광(李洸)은 금천을 경유하여 양천(陽川)의 북포에서 회합하기로 약속하였는데, 전라도선봉장 백광언(白光彦)은 이미 용인에서 적과 서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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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가 의병을 모집 지휘하고 있다고 보고하다.
김수(金睟)가 또 치계 하였다.
“신이 돌아오는 길에 충청도 예산현에 도착하여 본도의 도사 김영남(金穎男)의 치보를 보니 ‘김해부(金海府)의 왜적 900여 명이 전라감사라고 사칭하고서 전주로 떠났다.’ 고 하니, 이것은 필시 본도에 머무른 왜적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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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도지휘사가 국왕을 배종할 군신의 숫자 등을 묻는 자문을 보내오다.
요동도지휘사가 본국에 자문을 보내 왔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국왕은 잠시 물러나 서쪽에 와 있으나 종묘사직을 계승하여 지키는 것을 중히 여겨야 한다. 더구나 해국의 사민들은 임금을 그리는 마음이 없지 않아서, 이광(李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