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포겸정 ․ 좌지원윤 ․ 원지직 ․ 원도진 ․ 종정성 등이 사람을 보내 토의를 바치다.
일본 석견주(石見州)의 주포겸정(周布兼貞)이 도산(道山) 등 6명을 보내오고, 좌지원윤(佐志源胤)이 여아규(汝阿圭) 등 6명을 보내오고, 원지직(源持直)이 소아미(所阿彌) 등 6명을 보내오고, 원도진(源道眞)이 성육(聖育) 등 3명을 보내오고, 종정성(宗貞...
-
왜인 주포겸정 등이 사람을 보내 토의를 바치다.
임금이 왕세자와 문무 군신을 거느리고 망궐례를 행하고, 근정전에 나아가 왕세자와 백관의 조하를 받았다. 여러 도에서는 하전(賀箋)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 왜인 석견주(石見州) 주포겸정(周布兼貞)이 보낸 중 도산(道山)과 좌지원윤(佐志源胤)이 보낸 여...
-
마제독의 차관이 승전 상황을 보고하자 위로하고 배웅하다.
마제독(麻提督)의 차관이 첩서를 가지고 울산에서 오니 상이 별전에서 접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여러 대인들이 소방 때문에 친히 시석을 무릅쓴 탓으로 큰 공이 거의 이루어져 가고 있으니 감격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소이다. 천병이 다치지나 않았소이까?...
-
군문을 만나 승전을 축하하고, 가등청정을 사로잡을 계획을 논의하다.
상이 군문에게 행행하여 의식대로 배례를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울산의 승첩은 모두 황제의 은혜이자 대인의 위엄이었소이다.”
하니, 군문이 말하기를,
“어제 제독(提督)의 차인에게 들었습니다...
-
승정원에서 가등청정을 토굴 속에 포위했다고 아뢰다.
정원이 아뢰기를,
“군문통사(軍門通事) 박의검(朴義儉)이 방금 경리의 야불수 와 함께 왔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 달 23일에 경리가 친히 좌협과 우협의 병사들을 독려하여 울산(蔚山)을 공격, 함락시키고 5백여 급을 베었으며, ...
-
군문도감에서 적군과 아군의 대치 상황 등 전황을 보고하다.
군문도감(軍門都監)이 아뢰었다.
“제독(提督)의 차관에게 물어보니 ‘23일과 24일 양일간 교전한 뒤에 곧 도산(島山) 성 아래로 진격하였다. 성은 모두 네 겹으로 되어 있는데, 외성(外城)은 주위가 산아래에 까지 닿아 있고 흙...
-
접반사 이덕형 ․ 권율이 울산에서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경리의 접반사인 이조판서 이덕형(李德馨)과 도원수 권율(權慄)이 치계하였다.
“울산에서 승첩을 거둔 날 경리와 제독이 군영으로 돌아와 신을 불러 말하기를 ‘조선군이 현재 도착한 자는 단지 3천 5백에 불과하니, 이여매(李如梅)와 이방춘(李芳春)에게 ...
-
이시발이 포위를 풀고 경주로 철수했다는 소식을 알리다.
이 날 밤 2경에 분호조참의 이시발(李時發)이 충주(忠州)에서 치계하였다.
“오늘 계진순무아문(薊鎭巡撫衙門)의 차관이 남쪽에서 와서 오경력(吳經歷)에게 ‘천병이 도산을 포위한 지 10일이 지나도 격파하지 못했는데 구원을 온 왜선들이 많이 와서 정박했...
-
이조판서 이덕형이 왜적의 간첩을 잡아 심문한 내용을 보고하다.
경리접반사 이조판서 이덕형(李德馨)이 장계를 올렸다.
“총병(吳總兵)이 왜적의 간첩을 사로잡았는데 경리가 잡아다가 직접 물으니, 그가 ‘지난날 왜적들이 도산의 왜병을 구원한 것은 진짜 왜인이 아니라, 이는 고려인 수천 명이 왜인 수백 명과 협동하여 ...
-
울산 전투에서 부상한 자들에게 양식을 주어 격려케 하다.
병조가 아뢰기를,
“이번 도산(島山)의 싸움에서 우리나라의 전사들이 명령에 따라 분발하여 힘껏 싸운 내용이 전후의 장계에 자세히 실려 있고, 요즘 전쟁터에서 돌아온 자들도 더욱 그 실상을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 매우 가상한 일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