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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윤지완 등이 약조를 맺은 것과 일본의 사정에 대해 치계하다.
통신사 윤지완(尹趾完) 등이 왜국에서 돌아와 동래(東萊)에 도착하여, 먼저 연로의 견문과 약조를 거듭 밝힌 일들을 치계하기를,
“치제하지 못하게 한 한 가지 일은, 관백(關白)이 말하기를, ‘인국의 사신이 우리의 능침에 치제하는 것은 사리에 부당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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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정탐하러 갔던 박재흥 등이 돌아와서 정금사의 침공 소문이 근거 없음을 아뢰다.
대마도의 세견 17선이 왔는데, 문위역관(問慰譯官) 박재흥(朴再興) 등이 같이 돌아왔다. 이에 앞서, 대마도주 평의진(平義眞)의 글에 ‘동녕(東寧)의 정금사(鄭錦舍)가 기병을 크게 모아 풍박으로 만릿길을 와서 귀국의 지방을 침범하려 한다.’ 는 말이 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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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경연 남구만이 일본의 차왜가 돌아가지 않는 일 등과 대마도주의 죽음을 위문하기를 아뢰다.
주강에 나아갔다. 영경연 남구만(南九萬)이 말하기를,
“일본의 차왜가 회답하는 서계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아직까지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자는 이미 국서를 받아가지고 왔으니, ‘회답을 얻기 전에 빈 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고 하는 것도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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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왜 귤진중이 공차의 파견문제, 울릉도에 대한 문제 등을 다시 전달하여 오다.
지난해에 접위관 유집일(兪集一)이 조정에 돌아왔는데, 차왜 귤진중(橘眞重)이 오히려 제2서(第二書)의 회답을 요구하자, 남구만이 말하기를,
“교활한 왜의 정상이 절통하다. 어찌 또 그 제2서에 답서를 보낼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두 서신의 내용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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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박재홍과 한천석을 사치스런 생활을 이유로 추문하게 하다.
사역원에서 아뢰기를,
“동래에 차송하는 왜역 훈도·별차는 왜인과 아침저녁으로 상대하므로 이미 긴요한 직임이며, 또 이익이 많은 곳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요즈음에 와서 역관의 무리들이 근신하지 않는 것이 많아 국가의 체모를 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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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역 박유년 등에 대한 형벌을 정지하고 의논해서 처리하라고 판하하다.
금부에서 내역 박유년(朴有年) 등이 8,000냥에 정가했다는 설을 끝내 승관하지 않는다고 하여 형벌을 청했는데, 형벌을 정지하고 의논해서 처리하라고 판하하였다. 그 후에 박유년이 교대한 훈도 박재흥(朴再興)과 더불어 서로 전가시킴으로써 여러 해 동안 결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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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세백이 역관 박재흥을 동래로 옮겨 정당하게 한 뒤에 다시 가두도록 아뢰다.
대신과 비국의 모든 신하를 인견하였다.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이 말하기를,
“자산(慈山)에 사는 전 군수 조홍벽(趙弘壁) 등이 일찍이 자모산성(慈母山城)의 일로 소(疏)를 올려 감영에서 보낸 별장을 파하고, 본읍의 수령으로 관성장(管城將)을 삼아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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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국에서 역관 박재흥을 이수하는 문제에 대해 아뢰다.
비국에서 아뢰기를,
“집의 이진수(李震壽)가 역관 박재흥(朴再興)의 일로 진소하니, 묘당에 의논해서 처리하라 하셨습니다. 당초에 진달한 뜻은 만약 물을 만한 일이 있으면 이수하는 것으로써 정하자는 것이었는데, 말을 분명히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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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역 박유년 등을 왜관의 수리 문제와 관련하여 귀양을 보내도록 하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 이여(李畬)가 아뢰기를,
“왜역 박유년(朴有年) 등은 왜관을 수리할 때에 왜인처에게 준 값을 처음에는 7천냥으로 결정했었는데, 마침내 지급한 것은 2천냥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당초 정한 바와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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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찬관 김진규가 왜역들의 패단에 대해 아뢰다.
주강에 나아갔다. 참찬관 김진규(金鎭圭)가 힘껏 과옥을 먼저 참작해 처리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진달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참작해 처리하라는 본뜻을 이미 연중에서 죄다 말하였다.”
하니, 김진규가 아뢰기를,
“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