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국 관서의 비주 ․ 축주 태수가 토물을 바치고 예조에 치서하다.
일본국 관서(關西) 비주(肥州)․축주(竺州) 두주의 태수 등원조신국지위방(藤原朝臣菊池爲房)이 가라무라(加羅無羅) 등 8인을 보내어 와서 토물을 바치고, 예조에 치서하였다.
“지난번에 귀국(貴國)의 아름다운 교화(敎化)를 삼가 듣고 통호(通好)하여 앞...
-
경상우도 절도사 김응서가 왜적의 동향에 대해 치계하다.
경상우도 절도사 김응서(金應瑞)가 치계하기를,
“왜적이 함안(咸安)·진해(鎭海)·고성(固城) 등 해변에 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여 산막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살해하며 노략질하기를 조금도 기탄없이 자행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점차 만연되면 장차 그 피해...
-
왜를 만나 절개를 지킨 절부등 정표를 명하다.
명하여 효자(孝子)·절부(節婦)의 문을 정표(旌表)하라고 명하였다. ……
경상도관찰사 보고에 의하면 ……
“진주호장(晉州戶長) 정만(鄭滿)의 처는 최인우(崔仁祐)의 딸입니다. 기미년에 왜구가 진주에 침입하였을 때...
-
예조에서 열녀의 아들 정습이 잡과에 과거를볼 수 있기를 청하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진주(晋州) 아전 정습(鄭習)은 열녀의 아들이온데, 비록 장정 삼형제 중에 한 사람이 아니오나, 잡과에 과거보는 것을 허락하여 절의를 장려하고 풍속을 권면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좇았다. 습의 모친 최...
-
정만의 처최씨전
최씨는 영암군(靈岩郡) 선비 인우(仁祐)의 딸로서 진주호장 정만(鄭滿)에게 시집가서 자녀 4남매를 두었는데 마지막 아이는 아직도 강보 안에 있었다. 신우 5년에 왜적이 진주에 침입하였을 때 정만은 서울 가고 집에 없었다. 적이 마을로 침입하였으므로 최씨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