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사가 왜노에 대한 방책으로 4조를 서계하니 유순 ․ 김수동 등이 의논하다.
김근사(金謹思)가 4조를 서계하여,
“첫째, 국가에서 삼포의 왜리(倭里)에 제한 구역을 정하여 경계를 넘어 출입할 수 없게 한 것은 안팎의 구분을 엄히 하여 난잡히 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방자하게 출입하여 조금도 기탄이 없습…
-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황형이 왜노의 만행을 전하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황형(黃衡)이 치계하였다.
“왜노가 부산포 첨사를 겁박하여 죽일 때에 군사와 백성 모두 100여 인을 죽였고, 동평현(東平縣) 민가 12호, 동래현 민가 198호를 불태웠습니다.”
-
왜가 부산포에 들어와 천호와 사졸 10여명을 죽이다.
동평현(東平縣)의 부산포(富山浦)에 왜구가 들어와 천호(千戶) 김남보(金南寶)와 사졸 10여명을 죽이었다.
-
동평현 백성 이송이 왜인을 가장하여 일본에 가려다 발각되어 참형되다.
동평현(東平縣) 백성 이송(李松)이 왜인을 가장하여 일본에 가려 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어 참형에 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