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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웅천현에 있는 성을 가을에 증축하도록 하고 해안을 파게 하다.
충청·전라·경상도 도제찰사가 아뢰기를,
“경상도 웅천현(熊川縣)은 정사년에 진을 설치하고 절제사를 두어 읍성을 쌓았는데, 임신년에 〈진을〉 고쳐 현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성안이 좁아서 공해(公廨)와 군영을 세울 수가 없고,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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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현에 왜객을 지대하기 위하여 전농시 노비 등을 소속시키다.
의정부에서 경상도감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웅천현(熊川縣)은 새로 설치한 잔읍(殘邑)인데다 노비 또한 적어서 왜객을 지대하기가 심히 어려우니, 청컨대 부근 제읍(諸邑)의 전농시(典農寺) 노비 및 난신의 노비 35구를 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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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삼도 도순찰사 박강 등에게 행해야 할 일들의 조목을 아뢰게 하다.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도순찰사 박강(朴薑)과 부사 구치관(具致寬) 등이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여러 진과 여러 포를 순심하고, 당연히 행할 사건을 아뢰어, 하나씩 하나씩 조목조목을 열기 하였다.
“1. 이보다 앞서 남쪽 변방에서는 수군은 많이 설치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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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 처치사 이인이 선군이 왜인과 사귀는 것에 대해 치계하다.
이보다 먼저 경상우도처치사 이인(李茵)이 치계하기를,
“신이 관할하는 바의 제포(薺浦)의 선군이 왜놈과 섞여 살면서 사귀고 서로 왕래하니, 무지한 무리들이 〈왜놈의〉 농간에 걸리어 통전(痛箭)의 사용하는 법을 말하여 줄까 두렵고, 또 저들은 정교하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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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순찰사 홍응이 여러 도 내 여러 포의 보에 대해 서계를 올리다.
사도순찰사 홍응(洪應)이 서계하기를,
“제도의 제포(諸浦)의 보를 설치한 곳 가운데에서 전라도 장흥(長興) 회령포(會寧浦)의 보를 설치한 곳은 좌지(坐地)가 남향인데, 포백척(布帛尺)시축(尸祝)신주(神主)와 제문(祭文).으로 재면 둘레가 1,990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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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수도의 항거왜인에 대한 폐단을 아뢰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의 계본 안에 ‘수도(水島)는 웅천현과 7리 떨어져 있는데, 이에 앞서 제포에다 밭을 일구어 둔전으로 삼았다가 얼마 안 있어 다시 묵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항거왜인들이 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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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현에 잡아 가둔 왜인들을 내지 각 고을에 나누어 가두도록 하다.
경상도관찰사 김제신(金悌臣)에게 하서하기를,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이열(李烈)이 전후에 왜인 14명을 잡아 웅천현에 모두 옮겨 가두었는데, 본현은 제포에서 가까우니, 속히 내지의 여러 고을에 나누어 가두도록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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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 박전이 왜노 문제를 걱정하며 정벌하자고 상소하다.
감찰 박전(朴佺)이 상소하니, 그 대략에 이르기를,
“신이 듣건대, 제포·부산포·염포의 왜인은 조종조에 있어서 거접하기를 허락한 호수가 60으로, 그 나머지는 곧 쇄환하게 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그 형세가 고약하며 억세지 않고 잘 길들어, 신하를 일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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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사가 왜노에 대한 방책으로 4조를 서계하니 유순 ․ 김수동 등이 의논하다.
김근사(金謹思)가 4조를 서계하여,
“첫째, 국가에서 삼포의 왜리(倭里)에 제한 구역을 정하여 경계를 넘어 출입할 수 없게 한 것은 안팎의 구분을 엄히 하여 난잡히 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방자하게 출입하여 조금도 기탄이 없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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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대마도 경차관 윤은보가 가져갈 사목을 서계하다.
예조가 대마도경차관 윤은보가 가져갈 사목을 서계하였다.
“귀도(貴島) 사람이 처음 삼진에 투탁할 적에는 60호만을 거류하였는데, 연기가 점점 오래면서 생치(生齒)가 점차 번성하니, 다만 그 땅이 협애할 뿐만 아니라, 간세한 무리가 그 사이에 움터,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