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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에서 왜인에게 잡혀갔다 돌아온 차원길의 딸에 대한 정착을 건의하다.
병조에서 경상도감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동래현 사람 차원길(車元吉)의 딸 소근(小斤)이 일찍이 왜인에게 잡혀 가 대마도에서 50년간을 거주하면서 딸과 손자를 낳았사온데, 이제 그 딸과 손자를 데리고 장사하는 왜인을 따라 동래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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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동래현과 경기 강화에서 재배하는 왜닥의 작황상황을 감사가 보고하게 하다.
예조에서 전지하기를,
“경상도 동래현과 경기 강화에 왜닥[倭楮]을 재배하였으나, 가꾸는 것을 고찰하는 조문이 없어서 장차 절종(絶種)이 될까 두려우니, 감사로 하여금 매년 여름과 가을에 잘되고 못된 상황을 갖추어 아뢰게 하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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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동래현에 성을 쌓다.
경상도 동래현(東萊縣)에 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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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서 병조의 첩정에 의거해 소나무에 관한 감독 관리에 대해 상신하다.
의정부에서 병조의 첩정에 의거하여 상신하기를,
“병선(兵船)은 국가의 도둑을 막는 기구이므로 배를 짓는 소나무를 사사로 베지 못하도록 이미 일찍이 입법을 하였는데, 무식한 무리들이 가만히 서로 작벌하여 혹은 사사 배를 짓고,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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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순찰사 홍응이 여러 도 내 여러 포의 보에 대해 서계를 올리다.
사도순찰사 홍응(洪應)이 서계하기를,
“제도의 제포(諸浦)의 보를 설치한 곳 가운데에서 전라도 장흥(長興) 회령포(會寧浦)의 보를 설치한 곳은 좌지(坐地)가 남향인데, 포백척(布帛尺)시축(尸祝)신주(神主)와 제문(祭文).으로 재면 둘레가 1,990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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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의 개방 및 경상도 염포의 왜인 처리를 의논하다.
경연에 나아갔다. 강하기를 마치자, …… 장령 양희지(楊熙止)가 아뢰기를,
…… 양희지가 또 아뢰기를,
“경상좌도 수영이 본래 동래현 부산포에 있었는데, 국가에서 주장을 왜인과 섞여 있게 할 수 없다고 하여 울산 개운포(開雲浦)로 옮겨서 두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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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동래현 동평리 인가를 약탈하니 유계종 ․ 윤인복이 협공하여 패퇴시키다.
왜적 200여 명이 부산포(釜山浦)로부터 와서 동래현(東萊縣) 동평리(東平里) 인가를 약탈하였다. 절도사(節度使) 유계종(柳繼宗)과 동래현령(東萊縣令) 윤인복(尹仁復)이 협공하자 왜적은 패하여 달아났다. 이에 두 왜적의 목을 베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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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황형이 왜노의 만행을 전하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황형(黃衡)이 치계하였다.
“왜노가 부산포 첨사를 겁박하여 죽일 때에 군사와 백성 모두 100여 인을 죽였고, 동평현(東平縣) 민가 12호, 동래현 민가 198호를 불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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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수군절도사 김현손이 부산포에 도착했을 때의 형편을 아뢰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김현손(金賢孫)이 치계 하였다.
“신이 부산포에 이르러 친히 이곳의 형편을 살폈는데, 성 안팎 각처에 죽은 사람이 합계 91명인데 모두 옷을 벗겨 갔고, 남문 밖 한 사람은 머리를 베어 갔고, 성 안의 죽은 사람은 거의가 타 죽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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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남호정의 말과 달리 왕중군이 명사의 행방을 모른다는 장천뢰와 김효순의 전언을 아뢰다.
정원이 아뢰기를,
“어제 보낸 선전관 장천뢰(張天賚)와 역관 김효순(金孝舜)이 와서 말하기를, ‘수원(水原)에 도착하여 왕중군(王中軍)을 보고 물으니, 그의 대답이 「3일 2경에 정사가 이미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 바로 뒤쫓아 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