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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한술이 낭중 가유약이 지은 부산평왜비명의 초고를 올리다.6614. 접반사 한술이 낭중 가유약이 지은 부산평왜비명의 초고를 올리다. 낭중 가유약(賈維鑰)의 접반사 한술(韓述)이 장계하였는데, 낭중이 지은 부산평왜비명(釜山平倭碑銘)의 초고를 베껴서 올려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 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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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에 왜란을 겪은 후 병력이 감축되어 7천명을 다 보낼 수 없는 이유를 적어 보내다.격문에 답한 자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은흠차총독계요보정등처군무겸리양향경력어왜병부좌시랑겸도찰원우첨도어사(欽差總督薊遼保定等處軍務兼理粮餉經略禦倭兵部左侍郞兼都察院右僉都御史) 왕(汪)으로부터 ‘우리 대명의 위령 운운’ 하는 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