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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 10년(1115) 을미년
10년 봄 정월
초하루 임신일. 신년 하례행사를 생략했다.
계유일. 건덕전에서 요나라의 횡선사(橫宣使) 횡선사 요나라와 금나라가 고려와 서하(西夏) 같은 나라에 보낸 황제의 칙사를 말한다. 횡선사는 횡사사(橫賜使)로도 불렸으며, 고려왕을 책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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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4년(1126) 병오년
4년 봄 정월
갑오일.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
2월
정사일. 회안백(淮安伯) 왕기(王沂)가 죽었다.
무오일. 순종(順宗)의 연복궁주(延福宮主) 김씨 연복궁주 김씨 경주 김씨 김양검(金良儉)의 딸로, 순종이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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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6년(1128) 무신년
6년 봄 정월
정해일. 왕의 몸이 불편하자 재추들과 백관들이 종묘․사직․산천․불사(佛祠)․도우(道宇)에서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신묘일. 억울하게 수감된 죄수들이 없는지 재심사했다.
임진일. 금나라가 소회옥(蕭懷玉)을 보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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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27년(1197) 정사년
27년 봄 정월
병자일. 왕이 거처를 연경궁(延慶宮)으로 옮겼다.
신묘일. 금나라에서 아불한덕강(阿弗罕德剛)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했다.
2월
초하루 을사일. 일식(日食)이 있었다.
임자일. 밤에 어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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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7년(1204) 갑자년
7년 봄 정월
정묘일. 최충헌이 다시 문병하자 왕은,
“과인이 신하의 신분에서[藩邸 번저 궁궐(宮闕) 밖에 있는 제왕(帝王)의 저택(邸宅)을 말한다.]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공의 힘이었소. 이미 연로한데다 병까지 덧쳐 덧쳐 미류(彌留)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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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논평
사신(史臣)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신종은 최충헌이 세운 임금으로서, 사람들의 생사와 관리의 임명 등 모든 일이 최충헌의 손에서 나왔다. 왕은 다만 이름뿐인 왕위를 차지하고 신하들과 백성들의 위에 있는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참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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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종 총서
희종성효대왕(熙宗成孝大王)의 이름은 왕영(王韺)이고 자는 불피(不陂)이며 원래 이름은 왕덕(王悳)이다. 신종(神宗)의 장자로 그 모친은 정선태후(靖宣太后) 김씨(金氏)였다. 명종(明宗) 11년 신축년 5월 계미일에 나고 신종 3년 4월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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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종 즉위년(1204) 갑자년
정월
정축일. 신종(神宗)이 죽었다.
2월
경신일. 신종을 양릉(陽陵)에 장사지냈다. 낭중(郞中) 임영령(任永齡) 임영령 고종 2년(1215) 4월에 대사성(大司成)으로 국자감시를 주관하였는데 이 시험에서 김문로(金文老)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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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종 2년(1206) 병인년
2년 봄 2월
기미일. 신종(神宗)의 신위를 태묘(大廟)에 합사[祔 부제 국상(國喪)을 마친 뒤에 그 신주를 그의 조상 곁에 모실 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했다.
여름 4월
갑자일. 금나라에서 대리경(大理卿) 이자광조(移刺光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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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종 5년(1209) 기사년
5년 봄 정월
정유일. 왕이 금나라의 임금 임금 금나라 장종(章宗)을 말한다. 장종은 희종 4년 11월에 사망했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봉위사(奉慰使)로 사홍기(史洪紀) 사홍기(?~1227) 사홍기의 세계는 확인할 수 없으나 고종 8년(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