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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24년(1146) 병인년
二十四年 春正月 丁丑 金遣衛州防禦使完顔昇來, 賀生辰. 戊寅 王命太子, 引禮部侍郞鄭襲明, 講書大禹謨. 壬午 宴金使於大觀殿, 遂不豫. 丁亥 赦二罪以下. 辛卯 王疾篤, 卜曰, “資謙爲崇.”, 遣內侍韓綽, 徙置資謙妻子於仁州. 壬辰 百官就禱于普濟寺, 飯僧二千. 甲午 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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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논평
史臣金富軾贊曰, “仁宗自少, 多才藝, 曉音律, 善晝畵. 喜觀書, 手不釋卷, 或達朝不寐. 及卽位, 聞明經申淑貧甚, 召入內侍, 受春秋經傳. 性又儉約, 嘗不豫, 宰樞入內問疾, 所御寢席, 無黃紬之緣, 寢衣無綾錦之飾. 初年, 宮中宦寺, 及內僚之屬甚多, 每黜以微罪, 不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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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睿宗 후비
1. 경화왕후(敬和王后) 이씨(李氏)
경화왕후 이씨는 선종의 딸 선종의 딸 선종과 제1비 정신현비(貞信賢妃) 사이에 태어난 경화왕후(敬和王后)를 말한다. 정신현비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인주 이씨(仁州李氏) 이예(李預)의 딸로 선종이 즉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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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仁宗 후비
1. 폐비(廢妃) 이씨(李氏)
폐비 이씨는 조선국공(朝鮮國公) 이자겸(李資謙)의 셋째 딸이다. 다른 성씨가 왕비가 되면 자신의 권세와 총애가 반감될 것을 우려한 이자겸이 자기 딸을 왕비로 들이겠다고 청하는 통에 인종이 어쩔 수 없어 맞아들여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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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肅宗 왕자
숙종은 아들 일곱 일곱 숙종의 아들로는 이들 7명 이외에, 출가하여 견성적소수좌(見性寂炤首座)의 승계를 받고 귀법사(歸法寺)에 주지하였던 왕현응(王玄應)도 확인된다.김용선 편, 「승왕현응(僧王玄應) 묘지명(墓誌銘)」 『고려묘지명집성』, 한림대출판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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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王儒 부 왕자지王字之
왕유의 현손(玄孫)인 왕자지(王字之)는 자가 원장(元長)이며 처음 이름은 왕소중(王紹中)으로, 서리(胥吏)를 거쳐 벼슬에 올랐다. 누이의 남편인 왕국모(王國髦)가 이자의(李資義)를 죽일 때 죽일 때 헌종 원년(1095) 이자의(李資義)가 국왕을 대신하여 한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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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채문智蔡文 부 지녹연智祿延
지녹연(智祿延)은 음서로 내알자(內謁者) 내알자 고려시대 왕명의 전달과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궁궐문의 자물쇠와 열쇠의 관리, 궁궐 안뜰의 포설(鋪設) 등을 맡아보던 액정국(掖庭局)의 종8품 하급 관원이다. 본래 액정원(掖庭院)이었으나, 성종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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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李子淵
이자연(李子淵) 이자연(1003~1061) 자가 약충(若冲)이며, 소성백(邵城伯)이 된 인주 이씨[仁州李氏․慶源李氏] 이허겸(李許謙)의 손자로, 현종 15년(1024) 3월 지공거 유징필(劉徵弼)이 주관한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문종 때까지 어사잡단(御史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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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李子淵 부 이자덕李資德
이자덕(李資德)은 자가 관지(觀止)로, 성품이 공손하고 신중하였으며 효성과 우애가 있었다. 독서를 즐기고 또 불교를 좋아하였다. 음서로 경시서승(京市署丞)에 임명된 이후 여러 차례 승진하여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었다. 이자겸(李資謙)이 패망 패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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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李子淵 부 이공수李公壽
이공수(李公壽)는 자가 원로(元老)이며 원래 이름은 이수(李壽)였다. 어렸을 때 외조부인 시중(侍中) 최유선(崔惟善)이 그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이 아이는 반드시 큰 그릇이 될 것이다.”라고 격려하였다. 장성하자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 급제 급제 선종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