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9년(926) 병술년
9년 여름 4월
경진일. 견훤이 보냈던 인질 진호(眞虎)가 병으로 죽었으므로 시랑(侍郞) 익훤(弋萱)을 시켜 시신을 담은 관을 보내 주었다. 견훤은 우리가 진호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왕신(王信)을 죽이고 웅진(熊津)(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으로 진군했다…
-
태조 10년(927) 정해년
10년 봄 정월
을묘일. 왕이 친히 후백제의 용주(龍州)(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를 쳐서 항복시켰다. 당시 견훤이 맹약을 어기고 자주 군사를 일으켜 변경을 침략했지만 왕은 오랫동안 참아왔다. 그러나 견훤이 더욱 악행을 일삼으면서 우리를 병탄하려…
-
태조 15년(932) 임진년
15년 여름 5월
갑신일.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지(諭旨)를 내렸다.
“근래에 서경의 보수를 끝내고 백성을 이주 이주 태조 원년(918) 9월과 그 이후 왕건이 국방상문제 및 왕권안정의 도모와 함께 후백제와의 쟁패과정에서 개경(開京…
-
태조 16년(933) 계사년
16년 봄 3월
신사일. 후당에서 왕경(王瓊)과 양소업(楊昭業)을 보내 왕을 책봉하고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군왕된 사람은 하늘을 본받아 만백성을 기르고, 땅을 본떠 천하[八紘 팔굉 동․서․남․북․동북․동남․서북․서남으로 나라 …
-
태조 18년(935) 을미년
18년 봄 3월
○ 견훤의 아들인 신검(神劒) 신검(?~?) 견성(萱城)․수미강[須彌康․須彌强]이라고도 하며, 견훤의 맏아들이다. 그에 대해서는 『고려사』 권92, 열전5, 유금필전(庾黔弼傳) 참조.이 그 아비를 금산사(金山寺) 금산사 백제 무왕 때 김…
-
사신 김양경金良鏡의 논평
사신(史臣) 김양경(金良鏡)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옛날 후당(後唐) 명종(明宗) 때 대리소경(大理少卿) 강징(康澄)은 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당대의 정치를 비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두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다섯 가지이며,…
-
태조 9년(926) 병술년
九年 夏四月 庚辰 甄萱質子眞虎病死, 遣侍郞弋萱送其喪. 甄萱謂我殺之, 殺王信, 進軍熊津. 王命諸城, 堅壁不出. 新羅王遣使曰, “甄萱違盟擧兵, 天必不祐. 若大王奮一鼓之威, 萱必自敗.” 王謂使者曰, “吾非畏萱, 俟惡盈而自僵耳.” 萱聞讖云, ‘絶影名馬至, 百濟亡.’ …
-
태조 10년(927) 정해년
十年 春正月 乙卯 親伐百濟龍州降之. 時甄萱違盟, 屢擧兵侵邊, 王含忍久之. 萱益稔惡, 頗欲强呑, 故王伐之, 新羅王出兵助之. 乙丑 甄萱送王信之喪, 遣信弟育, 迎之.
三月 甲寅 渤海工部卿吳興等五十人, 僧載雄…
-
태조 15년(932) 임진년
十五年 夏五月 甲申 諭群臣曰 “頃完葺西京, 徙民實之, 冀憑地力, 平定三韓, 將都於此. 今者, 民家雌雞化爲雄, 大風官舍頹壞, 夫何災變至此? 昔晋有邪臣, 潜畜異謀, 其家雌雞化爲雄. 卜云, ‘人懷非分, 天垂警戒.’ 不悛其惡, 竟取誅滅. 吳王劉濞之時, 大風壞門拔木. …
-
태조 16년(933) 계사년
十六年 春三月 辛巳 唐遣王瓊․楊昭業來冊王, 詔曰 “王者法天而育兆庶, 體地而安八紘, 允執大中, 式彰無外. 斗極正而衆星咸拱, 溟渤廣而百谷皆宗. 所以居戴履之倫, 窮照臨之境, 弘道修德, 恭己虛懷. 歸心者, 睠爲王人, 嚮化者, 被以風敎. 由是, 擧封崇之命, 稽旌賞之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