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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패가대의 왜인 등원정청이 토물을 바치다.
세자(世子)가 계조당(繼照堂)에서 조참(朝參)을 받았다. 일본(日本) 패가대(覇家臺)의 왜인 등원정청(藤原定淸)이 와서 토물을 바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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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화관에 거둥하여 칙서를 받고, 왜인에 대해 답하다.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여 칙사를 맞이하고는, 근정전에 이르러 칙서를 받고 행례하기를 의식대로 하였다. ……
임금이 전에 올라가서 진가유(陳嘉猷)와 더불어 행례하고, 또 왕월(王軏)에게 행례하려고 하니, 진가유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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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지중추원사 송처검 등을 일본국의 통신사로 삼고 서계를 보내다.
첨지중추원사 송처검(宋處儉)을 일본국의 통신사로 삼고, 행호군 이종실(李從實)을 부사로 삼고, 종부시주부 이근(李覲)을 서장관으로 삼아 예물을 가지고 수미(秀彌)와 더불어 〈일본국에〉 함께 가도록 하였다. 또 명주 300필, 백금 500냥을 가지고 가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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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운과 이승소가 일본국왕의 사신 성춘과 서로 문답한 사조를 아뢰다.
예조겸판서 윤자운(尹子雲)과 판서 이승소(李承召)가 일본국왕의 사신 성춘(性春)과 서로 문답한 사조를 가지고 와서 아뢰었는데, 내용은 이러하였다.
“1. 본국에서 길을 떠난 일시를 물으니, 성춘(性春)이 대답하기를, ‘지난 갑오년 정월에 대우전(大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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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표류인 김비의 등으로부터 유구국 풍속과 일본국 사정을 듣다.
제주도 표류인 김비의(金非衣)·강무(姜茂)·이정(李正) 등 세 사람이 유구국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지나온바 여러 섬의 풍속을 말하는 것이 매우 기이하므로, 임금이 홍문관에 명하여 그 말을 써서 아뢰라고 하였다. 그 말에 이르기를,
“우리들이 정유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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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의 조하에 일본 사자 등도 참예하다.
임금이 면복차림으로 군신을 거느리고 중국 황제의 정조(正朝)를 하례하고, 근정전(勤政殿)에 나앉아 백관의 조하를 받았다. 여러 도의 군민관이 각각 방물을 바치고, 오도리(吾都里)의 오랑합(吾郞哈) 만호가 또한 방물을 바쳤다. 예가 끝나매 군신에게 잔치를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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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이 흔독 ․ 홍다구와 더불어 일본을 정벌하려고 패가대까지 이르렀으나 전패하다.
김방경(金方慶)이 흔독(炘篤)․홍다구(洪茶丘)와 더불어 일본을 정벌하려고 패가대(覇家臺)까지 이르렀으나 전패하여 돌아오지 못한 군사가 10여 만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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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 신우(辛禑) 2년에 …… 이때 왜적이 다수 내침하여 바닷가 여러 고을이 모두 쓸쓸하여 텅 비다시피 되었다. 나라에서 이것을 걱정하여 일찍이 나흥유(羅興儒)를 패가대(覇家臺)에 보내 화친할 것을 협의하게 하였던 바 그들의 주장이 나흥유를 투옥하였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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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익주를 침공하였고, 패가대 왜인의 사절 신홍이 울주에 정박하여 왜에게 겁을 주다.
…… 왜적이 익주를 침공하였다. 신우(辛禑)가 일찍이 좌사 홍중선(洪仲宣), 정당문학 권중화(權仲和) 등을 불러서,
“서울은 바다를 끼고 있으므로 적의 불의습격을 당할 우려가 있고 또 지기(地氣)도 성쇠가 있는 법이며 이 땅에 수도를 정한 지도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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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패가대에서 포로 되었던 우리 사람 150 명을 돌려보내다.
…… 일본 패가대(覇家臺)에서 포로 되었던 우리 사람 150명을 돌려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