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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의 피살과 통신사 파견에 대해 논의하다.
예조판서 김종서(金宗瑞)와 우참찬 이숙치(李叔畤) 가 아뢰기를,
“왜사(倭使) 돈사문(頓沙文)이 만일 최완(崔浣)이 왜인을 죽인 일을 물으면, 대답하기를, ‘정처 없이 함부로 다니는 것은 적선(賊船)으로 논한다는 것은 이미 약정된 것이므로 죽인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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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서 왜구를 잡아오라 칙지를 내리기 전에 잡아온 왜구를 보내는 것의 가부를 논의하다.
왕세자가 예조판서 김종서와 도승지 이승손(李承孫), 좌부승지 황수신(黃守身)을 불러 보고 임금의 교지를 전하였는데, 이에 이르기를,
“이제 사로잡은 왜적(倭賊)을 명나라로 잡아 보내는 것은 사세가 어려울 듯하나, 지금 풀어 보내는 잡혀 갔던 명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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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사 병조참판 신인손을 북경에 보내 제주 관선을 침범하고 약탈한 왜구를 중국으로 보냄을 아뢰다.
주문사 병조참판(兵曹參判) 신인손(辛引孫)을 북경에 보냈는데, 그 아뢰는 글에 이르기를,
“의정부에서 장계하기를, ‘정통(正統) 8년 8월 15일에 전라병마도절제사 남궁(南宮)이 제주목사 신처강(辛處康)의 정문을 갖추어 아뢰기를, 「본년(本年)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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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성이 왜구를 돌려 보낼 것을 청하면 명나라에서 청하여 어쩔 수 없이 보냈다고 하게 하다.
임금이 신개(申槩)와 하연(河演) 등에게 이르기를,
“이예(李藝)가 와서 아뢰기를, ‘저번에 대마도(對馬島)에 가서 적왜(賊倭)를 추쇄할 때에 종정성(宗貞盛)이 적왜를 죽이려 하므로, 신이 정성에게 이르기를, 「네가 지금 죽이고 보내지 아니하면,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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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에 중국의 화포 기술을 익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게 하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예조 판서 김종서(金宗瑞)가 아뢰기를, ‘일본 사람 등구랑(藤九郞)의 말에, 「내가 여러 나라 병선(兵船)을 보니 중국 배가 제일 좋고, 유구국(琉球國)이 그 다음이고, 조선 것이 가장 하등(下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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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중국인 관음보를 돌려 보내는 문제로 의논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종금(宗金)이 데리고 온 중국인 관음보(觀音保)가 말하기를, ‘본디 금산위(金山衛)에 살았었는데 14세 때에 사로잡히어 화가도(花加島)에 이르러 머물러 있는 지가 30여 년이 되옵는데, 고향이 그리워서 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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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을 명나라에 보내 일기 해적에 대해 예부에 자문하다.
이조참판 이변(李邊)을 보내어 명나라 서울에 가서 성절(聖節)을 하례하게 하고, 또 예부에 자문하기를,
“일본국(日本國)에서 보내어 온 중 건탁(乾琢)과 함께 온 사람 조문서(趙文瑞)와 시강(柴江) 등의 정사에 의거하면, 두 사람이 함께 절강(浙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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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의 접대를 위해 직제학 최항을 선위사로 삼다.
예조에 전지하기를,
“지금 오는 일본국(日本國) 사신은 다른 섬의 왜인(倭人)과 비교가 되지 않는데, 명나라 사신 때문에 중로에서 지체하여 머물게 하는 것이 예절에 어떠한가. 중국에서 이미 우리나라가 일본과 서로 통내(通來)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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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지 이충원 등을 가자하고 적의 형세, 민심의 동향 등을 묻다.
도승지 이충원(李忠元), 좌승지 노직(盧稷), 우승지 신잡(申磼), 좌부승지 민준(閔濬), 우부승지 민여경(閔汝慶)과 양사의 장관에게 각각 한 자급씩 가자하였다. 이보다 먼저 어가가 벽제에 이르렀을 때 호종하는 신하들에게 한 자급씩 가자 할 것을 명했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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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중국의 차인과 왜적 상황을 살피고 출병을 앞당기도록 할 계획임을 아뢰다.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묘시에 왜적 수백 기가 모두 잡색 기치를 가지고 강가 백사장에 주둔하여 오가며 치닫기에, 바로 역관에게 명조의 차인을 불러오게 하였더니, 두 사람이 한참 동안 바라보고서는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을 뿐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