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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수사 이상집이 동래 왜관의 훈도와 별차들의 논죄를 청하다.
왜인이 초량촌(草梁村)에서 옮겨간 후 여염에 왕래할 수 없게 되자, 아침에 저자가 설 때마다 우리나라 남녀들이 섞여 가면 남자들이 가진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팔리지 않고, 여인들이 가진 것은 비록 나쁜 것이라 하더라도 꼭 팔리기 때문에, 아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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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이여가 왜관의 공봉을 철폐할 것을 아뢰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재신들을 인견하였다. …… 이여(李畬)가 말하기를,
“동래부사 권이진(權以鎭)이 왜관의 공봉을 철폐하는 일로써 논열하여 장문하였습니다. 대개 조정에서는 애초에 관수왜가 이미 그 죄를 자복한 것을 알지 못하고, 책유한 후에 공봉을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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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방제조 민진후가 관수왜의 공봉을 허락하기를 청하다.
약방에서 입진하였다. 제조 민진후(閔鎭厚)가 말하기를,
“동래부사가 장계하기를, ‘관수왜가 공봉을 철폐한 후로부터 밤낮으로 눈물을 흘린다.’ 고 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한결같이 공봉을 철폐하면, 또한 개과 자신할 도리가 없으며, 왜인의 들어갈 기한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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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주의 조위차왜가 나오다.
일본 대마도주의 조위차왜(弔慰差倭)가 나오니, 접위관을 차송하였다. 예로부터 국상이 있을 때에는 통부하는 규례가 없었고, 다만 역관으로 하여금 왜관에 전달하였으며, 관수왜(館守倭)가 대마도에 보고하였다. 그러면 도주는 차왜를 보내어 향과 폐백을 가지고 나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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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정언섭이 관백이 평미일에게 승습할 것을 허락했음을 장계하다.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장계하기를,
“관수왜가 와서 말하기를, ‘경술년에 도주 평의성(平義城)이 죽은 뒤 그의 아들 평미일(平彌一)이 어려서 승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아우 방희(方熙)가 우선 임시로 업무를 보살피고 있었는데, 금년 봄 관백(關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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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래부사 홍중효를 차왜를 약정한 기일에 돌려보낸 공으로 특별 석방하다.
전 동래부사 홍중효(洪重孝)를 특별히 석방하였다. 이보다 앞서 차왜가 왔을 때 그냥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차왜는 본래 관수왜인 귤여동(橘如棟)과 서로 좋아하지 않았다. 홍중효가 이를 염탐해 알고서는 반간계를 행하여 조정에서 장차 연례공작미(年例公作米)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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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왜관이 손상된 것에 대해 보수할 것과 관련된 여러 지시를 하교하다.
임금이 동래부사의 장계를 보고 하교하기를,
“교린의 도리는 성신이었어야 마땅한 것인데, 지금 듣건대 왜관이 몹시 손상되어 무너진 곳은 그냥두고 심하지 않은 곳을 보수하였다 하는데,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룬다’ 는 것은 옛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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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주가 부음보다 경사를 먼저 고한 것에 대해 접위관을 차견하지말 것 등을 명하다.
대마도주가 죽었다. 새 도주가 승습하고서 부음을 고하지 않고 먼저 경사를 고하였다. 하교하기를,
“우리나라는 본래 예의의 나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더구나 이웃 나라와 교제함에 있어서는 더욱 예의로써 서로 수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근래에 접위관의 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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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왜가 대마도태수가 죽었다가 5일만에 소생하였다는 사정을 2개월만에 통보하다.
동래부사 이이상(李頤祥)이 치계하기를,
“훈도 정일성(丁一星)이 와서 고하기를, ‘어느 날 관수왜가 수문통사를 시켜 소인 등과 만나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별차와 더불어 가서 보니 섬 안에 크나큰 경사가 있다고 하면서 대마도태수가 죽은 지 5일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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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유강이 치계하여 왜인들이 규정 이외로 의빙사를 보내옴을 알리다.
동래부사 유강(柳墾)이 치계하기를,
“이 달 13일에 훈도별차가 보고하기를 ‘왜인의 큰 배 한 척이 관에 이르렀기에 실정을 물으니, 기묘년 조약에 의한 제 8선의 왜인 선원 30명과 의빙대차왜의 선문을 가져온 두왜 한 명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