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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권이진이 역관들과 왜인들의 접촉을 금하도록 할 것 등을 아뢰다.
이보다 앞서 동래부사 권이진(權以鎭)이 장계하여 변경의 일을 조목으로 열거하고, 이정(釐正)을 더하기를 청하였는데,
“1. 역관이 초량촌(草梁村) 안에 살고 있는데, 왜인이 약조로써 훈도·별차의 집에 왕래를 허용하였다고 하여, 온종일 계속해서 모두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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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마도주의 조위 차왜에 접위관을 보내다.
일본 대마도주의 조위차왜(弔慰差倭)가 와서 접위관을 차송하였다. 국상을 당하였을 때 일본에 통부하는 규례는 없고 단지 역관으로 하여금 왜관에 전달하도록 하며, 관수는 대마도에 보고한다. 대마도주가 차왜를 보내어 예조에 조위하는 글월을 바치고 우리나라는 접위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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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독관 임제원이 열성조께서 인심을 배양했기에 임란 극복이 가능했다고 하다.
소대하였다. ≪국조보감≫을 진강했는데, 시독관 임제원(林濟遠)이 말하기를,
“이는 임진년 일의 전말입니다. 당시의 병력으로 말하건대 출정한 상장병이 8천 인에 지나지 아니하여 오늘날의 병력에 비하건대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였고, 당시의 인물로 말하건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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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왜가 대마도태수가 죽었다가 5일만에 소생하였다는 사정을 2개월만에 통보하다.
동래부사 이이상(李頤祥)이 치계하기를,
“훈도 정일성(丁一星)이 와서 고하기를, ‘어느 날 관수왜가 수문통사를 시켜 소인 등과 만나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별차와 더불어 가서 보니 섬 안에 크나큰 경사가 있다고 하면서 대마도태수가 죽은 지 5일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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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홍문영이 관백 원가치가 죽었음을 치계하다.
일본 관백 원가치(源家治)가 죽었다. 동래부사 홍문영(洪文泳)이 급히 보고하기를,
“훈도 정사옥(鄭思鈺) 등의 서신에 ‘관수 왜인이 「저희 나라가 불행하여 올해 8월 8일에 관백 원가치가 죽었다. 저희 나라 8월은 귀국의 윤7월이므로 개시는 내달 1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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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정 이경일이 서계와 도서를 위조하고 위조한 서계를 서사한 최경 등을 효수할 것을 아뢰다.
차대하였다. 우의정 이경일(李敬一)이 아뢰기를,
“동래부의 간사한 역관들이 왜인과 교통하여 뇌물을 받고 나라를 속인 죄상이 이제 이미 안핵사의 밀계에서 모두 탄로가 났는데, 이는 실로 전고에 없던 극악이요 대대인 것입니다. 수악은 박준한(朴俊漢) ·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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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김재찬이 부특송사선, 고환차왜, 재판왜 등 여러가지 폐단을 제거할 것을 청하다.
차대하였다. 좌의정 김재찬(金載瓚)이 아뢰기를,
“역관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가게 하는 것은 관백(關白)의 지부와 도주의 정위를 탐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허실과 진위를 분명히 안 연후에 통신사를 들여보내야 합니다. 통신사의 사행이 있은 지가 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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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대비가 적신 남응중을 압송한 관수에게 은자 천냥을 내려주다.
대왕대비가 하교하기를,
“이번에 적신 남응중(南膺中)의 지극히 흉패함은 서적에도 실려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관에 몰려 투서해서 전혀 근거 없는 허황된 말을 지어내어 감히 두 나라에 흔단을 얽고자 한 것은 더욱 분완하게 여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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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사 김공현이 대마도의 봉행왜가 관수에게 보낸 글과 이양선의 선양 ․ 인형의 도본을 아뢰다.
경상감사 김공현(金公鉉)이 대마도의 봉행왜가 관수에게 보낸 글과 이양선의 선양·인형의 도본을 아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