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이 박자안의 일을 예로 들면서, 군기누설을 엄히 하라고 명하다.
    도승지 이목(李楘)이 아뢰기를, “변란 후 인심이 부박해져서 어떤 계획이 세워지면 대부분 누설되고 말기 때문에 지난번 연석에서 대신이 아뢴 것이 비록 의구심을 가라앉히기 위한 의도에서였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중대한 일을 어찌 붓을 쥐고 있는 신하들이 참여…
  • 수군도절제사 박자안과 신용무를 용서하여 왜적을 치게 하다.
    좌도수군도절제사(左道水軍都節制使) 박자안(朴子安)과 우도수군도절제사(右道水軍都節制使) 김을귀(金乙貴)에게 명하여 병선을 거느리고 바다에 내려가서 왜적을 잡게 하였다.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정희계(鄭熙啓)가 아뢰어 청하였다. “지난번에 도평의사사에서…
  • 나가온 등 10인을 서울로 보내고, 나머지를 엄습하자 도망가다.
    나가온(羅可溫)이 뵙기를 청하니 관찰사가 허락하였다. 나가온이 그의 무리 80인을 거느리고 밀양부(密陽府)에 이르니 관찰사 이지(李至)가 술과 음식을 먹이고, 나가온 등 10인은 서울로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배로 돌려보내었다. 도안무사(都安撫使) 박자안(朴子安…
  • 박실이 왜를 막은 공으로 그의 아버지 박자안을 죽음에서 구하다.
    순군천호(巡軍千戶) 한을기(韓乙氣)를 보내어 박자안(朴子安)을 군중에서 베이게 하였는데, 그때에 자안이 왜적을 쫓아 바야흐로 전라도 진포(鎭浦)에 이르렀다. 일이 저 적에 관계되므로 비밀히 하고 선포하지 않으니, 바깥 사람들이 알수 없었다. 그 아들 박실(朴實…
  • 박자안을 윤방경 ․ 하윤이 연루되어 함께 투옥되다.
    박자안(朴子安)을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권중화(權仲和)로 위관(委官)을 삼고, 대간·형조와 함께 국문하니, 자안의 공사(供辭)가 경상도 도절제사 윤방경(尹邦慶)과 계림부윤(鷄林府尹) 하륜(河崙)에게 미치었다. 모두 옥에 불러 오게 …
  • 박자안을 삼척으로 귀양보내고, 윤방경 하윤은 광주와 수원에 각각 안치하다.
    순군(巡軍)에 명하여 박자안(朴子安)을 베이게 하였다가, 조금 뒤에 도승지 정담(鄭澹)에게 명하여 가서 석방하되, 다만 직첩만 회수하고 장(杖) 100에 삼척(三陟)으로 귀양보내고, 윤방경(尹邦慶)을 광주(廣州)에, 하륜(河崙)을 수원(水原)에 안치하게 하였다.
  • 세자가 왜적을 막지 못한 박자안과 그의 아들 박실의 효를 논하다.
    세자가 빈객(賓客) 정탁(鄭擢)과 더불어 충효의 도리를 강론하였다. …… 세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명에 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축년에 박자안(朴子安)이 왜적을 막지 못하였으…
  • 왜가 창궐하자 박자안 등을 지휘관으로 삼아 출병시키다.
    이지(李枝)로 순녕군(順寧君)을 삼고,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 박자안(朴子安)으로 경기·충청·전라도 수군도체찰사(水軍都體察使)를 삼고, 풍천군(豊川君) 심귀령(沈龜齡)·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유습(柳濕)·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김만수(金萬壽)로 삼도조전…
  • 왜적을 사로잡지 못하는 유습 등 도체찰사를 소환하다.
    유습(柳濕) 등을 소환하였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3도 도체찰사(都體察使) 등이 바다에 내려간 뒤에 연해 각 고을에 왜적이 가끔 침입하여도 사로잡지 못하니, 이것은 각각 병선을 가지고 머뭇거리고 전진하지 않는 것이 아니면, 반드시 여러 사람의 모책…
  • 왜선을 격파한 도체찰사 박자안과 절제사 심귀령에게 술을 내리다.
    삼도도체찰사(三道都體察使) 박자안(朴子安)과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 심귀령(沈龜齡)에게 궁온(宮醞)을 내려 주었다. 자안 등이 전라도에서 왜선 1척을 잡고 머리 20급을 베고 5인을 생포하였는데, 그 중 1명은 본국에서 잡혀 간 자였다. 그러므로 자안이 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