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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중언륙 등의 왜인이 와서 토의를 바치고, 태종의 상을 위문하다.
대마도의 종언륙(宗彦六)․등차랑(藤次郞)․우위문대랑(右衛門大郞) 등이 사신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고 태종(太宗)의 상을 위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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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정벌할 때 잡아온 왜인을 돌려보내다.
처음에 태종이 대마도를 정벌하여 좌위문삼랑(左衛門三郞)과 등차랑(藤次郞)을 잡아와서 군현에 나누어 두었다가, 태종이 그들 2사람은 대마도에서 호족이었다는 말을 듣고, 서울로 불러 올려 집을 주고 양가집 딸을 아내로 주고 모든 음식․의복 등 물건을 넉넉히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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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부원군 성석린의 졸기.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 성석린(成石璘)이 졸하였다. 석린의 자는 자수(自修)이니, 경상도의 창녕 사람으로서 문정공(文靖公) 성여완(成汝完)의 아들이다. 스스로 독곡수(獨谷叟)라고 호칭하였다. 공민왕 6년 정유에 과거에 오르니, 나이 20세였다. ……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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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에 나아가 회시에 입격한 유생 남수문 등에게 책문하다.
근정전에 나아가서 회시(會試)에 입격한 유생 남수문(南秀文) 등에게 책문(策問)하였다. 그 책문에,
“왕은 말하노라. 대개 듣건대 요순의 지혜로서도 반드시 급무부터 먼저 한다는 것은 맹자의 격언이니, 정치를 말하면서 급무를 먼저 하지 않는다면 모두 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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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도안무사 신유정의 졸기.
전 도안무사 신유정(辛有定)이 졸하였다. 유정은 경상도 영산현(靈山縣) 사람인데, 판개성부사 신부(辛富)의 아들이었다. 음직으로 산원에 보직되었다가 여러 번 옮겨 정용호군에 이르렀다. 병인년에 족형 충청도도원수 이승원(李承源)을 따라 왜구를 쳤는데, 승원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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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성이 보낸 사람이 백성이 되기를 원했으나 허락하지 않다.
정사를 보았다. 예조판서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이번에 온 종정성(宗貞盛)의 보낸 사람이 전지를 받고 우리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니, 임금이 찬성 권진(權軫)에게 묻기를,
“태종 때에도 또한 이와 같은 자가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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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 세자의 양관을 청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 논의하다.
조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대언들에게 말하기를,
“명분은 천하의 중대한 일이다. 세자의 양관(梁冠)양관(梁冠)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을 입을 때 쓴 관.은 마땅히 속히 조정에 청구하여야 하겠다. 예전에 정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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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 사로잡혔다 온 중국인 다금부를 명에 돌려보내도록 하다.
정사를 보았다. 예조판서 신상이 계하기를,
“중국인 다금부(多金夫)가 나이 네 살 때에 왜에게 사로잡혀 갔다가, 지난 기해년에 우리나라에 왔사온데, 이제 명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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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신이 왜구를 막을 병선을 제조할 것을 상소하다.
병조 참의 박안신(朴安臣)이 상서하기를,
“나라를 위하는 도리는 오직 마땅히 지난 일을 거울삼아 뒷일을 염려하여, 그 장구히 다스려지고 오래 편안하기를 도모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왜도(倭島)와 심히 가까와서, 예전 삼국시대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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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에서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성격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
경연에 나아가서 강하다가 요의 임금인 분와사열(奔訛沙烈)의 대목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이적(夷狄)은 마음이 본시 순후(純厚)하므로, 그들이 대우하는 것도 이렇게 후하다. 지금 왜인이 매우 강악하지만, 윗사람을 섬김에 있어서 절조를 위하여 죽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