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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교린 문서의 대보에 대해 의논하다.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대보는 쓰는 곳이 심히 많은데 금의 성질은 본디 유연하여 점점 닳아 없어질 것이 우려된다. 그러나 작명은 큰일이므로 쓰지 아니 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옳겠는가?”
하니, 도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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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 수군의 계승 문제에 대해 논하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 이극균(李克均)이 계달한 가운데, ‘지금 새로운 군적사목에 조군·수군 자손은 비록 다른 역에 속하였다 하더라도 ≪대전(大典)≫에 의하여 대대로 그 직업을 전하게 하였으나, 이 법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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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명보와 대보의 사용에 대해 의논하다.
도승지 김응기(金應箕)가 그 아버지 김지경(金之慶)의 관교를 가지고 아뢰기를,
“경태(景泰) 원년·5년과 성화(成化) 원년의 관교를 상고하면 모두 시명보를 썼는데, 성화 2년의 관교 인문에는 단지 시명(施命) 두 글자만 쓰였으니 곧 옥보입니다. 신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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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왕의 서계에 답하는 일을 의논하다.
유구국왕의 서계에 답하는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회봉물건은 서계에 기재하지 말고, 단지 사자에게만 주어서 보내는 것이 또한 무방합니다.”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지금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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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의 역 계승에 관해 의논하다.
병조에서 황주목사(黃州牧使) 유제(柳睇)가 진술한 말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수군은 다른 육군에 비례할 것이 아닙니다. 바다를 항행하고 배를 조종하는 어려움이 하루아침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난 갑오년 수교에 이르기를, ‘부자가 서로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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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 이극균이 사조하다.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사조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제도(諸道)의 관찰사와 절도사가 각각 호피·표피를 올리는데, 일부러 많이 올리기를 다투어 힘써서 수령에게 독촉하여 조금이라도 지연됨이 있으면 반드시 색리를 태장으로 논죄하므로, 이로 인하여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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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에 표를 붙이는 일을 의논하다.
예조에서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계달한 바, ‘왜선에 표를 붙이는 일’ 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왜인들이 배를 빌려서 대신 점고를 받고 요를 받아서 나누어 쓰는 폐단을 도주에게 이미 누차 통유하였으나, 조금도 금방하지 아니하고 인순에 길들여져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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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수도의 항거왜인에 대한 폐단을 아뢰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의 계본 안에 ‘수도(水島)는 웅천현과 7리 떨어져 있는데, 이에 앞서 제포에다 밭을 일구어 둔전으로 삼았다가 얼마 안 있어 다시 묵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항거왜인들이 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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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경차관 정석견이 동도를 점유하고 고기잡이한 왜인들의 처치에 대해 치계하다.
경상도경차관 정석견(鄭錫堅)이 치계하기를,
“신이 제포에 이르러 왜추 사두사야문(沙豆沙也文) 등을 거느리고 동도(東島)에 가서 살펴보니, 화지라사야문(和知羅沙也文)이 막사(幕舍)를 짓고 고기잡이를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이 땅은 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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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포의 왜인의 처치에 관해서 의논하게 하다.
정석견(鄭錫堅)이 국문한 제포의 왜인에 관한 일을 의논하게 하라고 명하니,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지금 아뢴 바를 보건대, 왜인들이 막사를 부수고 그물을 거두어 배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으며 이미 순종하고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그 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