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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11년(1181) 신축년
十一年 春正月 戊申朔 放朝賀. 己酉 以李知命爲右諫議大夫. 辛亥 寫經院火. 先是, 命寫成銀字藏經, 公私競納錢財, 而助之, 無賴輩, 欲盜其物, 因火之. 甲寅 知樞密院事李應招卒. 戊午 遣衛尉少卿李輔德如金, 獻方物. 庚申 移御景禧宮. 辛酉 燃燈, 王如奉恩寺. 翌日大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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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11년(1224) 갑신년
十一年 春正月 戊戌朔 放朝賀. 丙午 蒙古使札古也等十人來. 戊申 東眞國遣使, 賫牒二道來, 其一曰, “蒙古成吉思師老絶域, 不知所存, 訛赤忻, 貪暴不仁, 己絶舊好.” 其一曰, “本國於靑州, 貴國於定州, 各置榷場, 依前買賣.” 癸丑 宰樞會崔瑀第, 議接蒙眞兩國使之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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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楊規 부 양대춘楊帶春
양대춘(楊帶春)은 정종 6년(1040) 안북대도호부부사(安北大都護府副使)가 되었다. 이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최충(崔冲)이 “양대춘은 뜻이 높고 빼어나며 지략이 많아 군사의 일에 익숙합니다. 만약 국경에 변란이 생길 경우 이 사람이 아니고는 보낼 만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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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李子淵 부 이혁유李奕㽔
이혁유(李奕甤)는 처음 이름이 이응의(李應誼)로, 젊어서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차례 승진해 직문하성(直門下省)이 되었다. 올린 의견이 대부분 왕의 뜻에 맞았으므로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죽은 후 시호를 정간(貞簡)이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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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보邵台輔 부 왕국모王國髦
왕국모(王國髦) 왕국모(?~1095) 강릉 왕씨(江陵王氏) 왕예[王乂․金乂]의 후손이다. 이 집안은 본래 신라의 왕손 김주원(金周元)을 시조로 하는 강릉 김씨(江陵金氏)의 후손이었으나, 고려 태조 때 공신 김예(金乂)가 왕씨를 받아 강릉 왕씨가 되었다. 왕국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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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함鄭諴
정함은 인종(仁宗) 때 내시서두공봉관(內侍西頭供奉官) 내시서두공봉관 문종 30년(1076)에 남반직을 관등(官等)을 하향 조정하면서 신설된 관직이다. 문종은 원래 남반 출신의 최고직이던 4품의 남반선휘사(南班宣徽使)를 폐지하고 7품의 내전숭반(內殿崇斑) 4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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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포칭崔褒偁
최포칭(崔襃偁)은 의종(毅宗) 초에 어사잡단(御史雜端)이 되었고, 직문하성(直門下省)․상서우승(尙書右丞)․전중감(殿中監)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후 우승선(右承宣)에 임명되었다가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전임되었으며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승진했고 곧 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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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준경拓俊京
척준경(拓俊京) 척준경(?~1144) 척준경의 가문은 척준경대에 향리가문에서 일약 재상가문으로 성장하나 척준경이 제거된 후 망성(亡姓)이 되었다. 이수건, 『한국중세사회사연구』, 일조각, 1984.은 곡주(谷州)(지금의 황해북도 곡산군) 사람으로 선조는 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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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妙淸
묘청(妙淸)은 서경(西京)의 승려로 뒤에 정심(淨心)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인종(仁宗) 6년(1128)에 일자(日者) 일자 일관(日官)이라고도 하며 주로 하늘과 땅의 변화를 관찰하여 점쳐서 그 의미를 분석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관은 중국에서는 춘추시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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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林衍
임연(林衍) 임연(?~1270) 임연은 진주(鎭州)를 관향으로 하는 향리 출신으로 여겨진다. 김준이 최의에게 임연을 천거할 때 장사로서 쓸만한 인물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그의 무사적 기질이 높이 평가되어 진급과 동시에 최씨가의 사병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