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장 이인을 원나라에 파견하여 배를 만드는 군대들에 대한 식량 공급의 어려움을 아뢰다.
별장 이인(李仁)을 원나라에 파견하여 중서성에 글을 보내기를,
“금년 정월 초이튿날에 나의 신하인 문하시중 김방경(金方慶)이 중서성의 지시를 받아 왔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큰 배 3백 척을 전라도, 탐라 두 곳에서 만들도록 할 것이다.’ 라고 하였...
-
나유
나유(羅裕)는 나주(羅州) 사람이다. …… 또 김방경(金方慶)을 따라서 원나라 장수 홀돈(忽敦) 등과 함께 일본 정벌에 나갔으며 응양군(應揚軍) 대장군으로 조동되었고 황제는 그에 금패(金牌)를 주고 무덕(武德) 장군 관(管) 고려군 천호(千戶)로 임명하여 ...
-
최영
…… 최영(崔瑩)은 풍채가 헌걸차고 체력이 남보다 뛰어 났다. 처음에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의 휘하에 있으면서 누차 왜적을 사로잡아 용맹을 떨쳤으므로 달적(達赤)으로 채용되었다. …… 공민왕 6년에 외직으로 나가서 서해(西海), 평양(平壤), 이성(...
-
정지
공민왕 23년에 검교중랑장(檢校中郞將) 이희(李禧)가 수전(水戰) 훈련에 관해 왕에게 글을 올렸다. 왕이 개탄해 말하기를
“이희는 조정 밖에 있는 신하인데도 이렇게 건의하고 있다. 그런데 조정의 관료들과 나를 시위하는 군인들 중에는 일찍이 한 사람...
-
하을지
하을지(河乙沚)는 진주 사람이다. 충혜왕 때에 과거에서 1등으로 급제하였다. 공민왕 때에 강화만호로 되었다. 왜적의 배가 동서강에 집결해 양천(陽川)을 침범하고 드디어 한양부에 가서 가옥을 불사르고 백성을 살상 약탈하였다. 왕이 하을지와 한양윤(漢陽尹) 신...
-
김굉
…… 공민왕 때에 왜적이 나주에 침입하였을 때에 김굉(金鈜)이 목포(木浦) 사람들을 인솔하고 적을 격퇴하여 그 공으로 복직되었으며 조정의 권세 있는 집들에 재물을 바치고 누차 전라도 포왜사(捕倭使)로 되어 자못 전공이 있었다. 그리고 홍적(紅賊)이 경성(京...
-
설장수가 나주 일대에 성을 만들고 군함을 만들어 왜가 침입하지 못하게 하도록 이르다.
…… 설장수(偰長壽)가 명나라에서 돌아왔는데 전달하여 온 황제의 교시에 이르기를,
“…… 당신이 하는 말을 내가 알 만하고 내 말을 당신이 알 만하겠기에 이 말을 당신에게 한다. 당신은 나의 의사를 집정 대신들에게 말하라! 요컨대 지성(至誠)이면 ...
-
왜선 350척이 합포에 침범하여 군영과 병선을 불사르다.
왜선 350척이 합포에 침범하여 군영과 병선을 불사르니, 죽은 사졸이 50여 명이었다. 명하여 도순문사 김굉(金鈜)을 목 베고, 팔다리를 찢어 여러 도에 돌리게 하였다. 김굉이 처음에 나주에 거주할 적에, 토지와 노비를 빼앗아 재산이 넉넉하였다. 일찍이 왜...
-
왜적이 전라도 원수의 군영을 침범하고, 영산과 나주를 침범하여 불을 놓고 노략질하다.
왜적이 전라도원수의 군영을 침범하고, 또 영산(榮山)을 침범하여 전함을 불사르고, 또 나주를 침범하여 불을 놓고 노략질하였다. 이때에 원수 하을지(河乙沚)는 유영(柳濚)이 자기 대신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곧 진주 농장으로 돌아갔다. 왜적이 틈을 타서 침범하...
-
해도원수 정지가 남해현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다.
해도원수 정지(鄭地)가 남해현에서 왜적을 쳐서 크게 파하였다. 이때에 정지가 거느린 전함은 겨우 47척이었는데, 나주와 목포에 머물러 있었다. 적선 120척이 크게 이르자, 경상도 바닷가의 고을들이 매우 동요하였다. 합포원수 유만수(柳曼殊)가 위급함을 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