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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한2012한일관계사연구우리는 역사에서 어떤 국가의 내부 혼란이 주변의 다른 국가의 정치와 정책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한 가지 예로서 왜구의 출몰로 시작된 고려와 조선의 대왜(對倭)정책을 들 수 있다. 13세기 이후 왜구의 등장은 고려와 조선으로 하여금 왜구의 경계침탈을 막기 위한 대왜 외교를 적극 추진하게 만들었다. 왜구의 경계침탈과 그로 인해 전개된 외교의 양상을 몇 가지로 요약 정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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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2012한일관계사연구조선 초기부터 북방의 경계를 두만강과 압록강으로 하였다는 인식이 있었던 반면 조선의 영역은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이라는 인식이 있어 왔다. 따라서 조선은 얼마든지 두만강이라는 경계를 넘어 그 지역에 5진과 같은 鎭을 설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본고에서 살펴보는 明宗대 伊應巨島(또는 仍巨島)의 子母鎭 설치는 조선의 영역인식과 관련되어 실행된 사례이다. 이응거도는 慶興鎭에서 북쪽으로 10~20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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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2011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이 글에서는 조선조에 패설·야담·소설 등의 서사장르를 통해 담론화된 기생의 섹슈얼리티를 ``나쁜 기생``의 경우와 ``열녀 기생``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 두 유형은 기생의 신분적 한계를 탈피하여 민중의 저항 정신과 풍자 정신을 구현한 형상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그 의미가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의문시되고 있다. ``나쁜 기생``과 ``열녀 기생``은 도구적으로 규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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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2011한국문화In this article, the culture of publication that prevailed in the 19th century Joseon will be examined, by studying some books published by the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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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한2011한일관계사연구중근세 일본의 "경계영역"은 고려·조선과의 교역이나 왜구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인적·물적 유통의 중심지이며, 아울러 왜구의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중세 일본인이 인식하는 "경계영역"의 범위는 대마도·壹岐·松浦 지역을 포괄하는 北九州 지역과 大隅를 포함하는 南九州 지역이었다. 고려시대 일본의 "경계영역"에서 상당수의 일본인이 고려에 들어와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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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2010탐라문화지역의 풍토색은 지역의 생산력과 결합하여 다양한 기층문화로 나타난다. 그 문화는 다시 인간에 의해서 생산되고 향유되며 문화이데올로기화 된다. 제주도(濟州島)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는 이런 풍토적인 문화를 잘 반영한 기층문화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주류 문화 중 하나였던 효제문자도는 유교의 덕목을 도상화(圖像化)하여 일상 속에서 조선 왕조의 국가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자 했던 교훈적인 그림 병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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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용2010문화재본 고는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에 유존하는 태실 석함(이하 태함)의 현황을 살펴보고, 제작연대를 바탕으로 형식을 분류하여 고고학적인 태함의 양식을 설정하고 그 편년을 시도한 것이다. 태함은 태실을 처음 조성할 때 매납하는 유물이지만 명문이 각자되지 않으므로 태함 자체만으로 연구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태실 조성 시 함께 제작하는 태지석과 아기비의 명문을 찾아 살펴보고 문헌기록을 대조하여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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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일2010東北亞歷史論叢Separated by seas, the three countries of Korea, China, and Japan engaged actively in interaction too in the pre-modern period. As maritime ac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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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2009한일관계사연구본고는 『朝蘇王朝實錄』에 냐타냐는 覆野人에 대한 ‘字小’의 용례 들을 소개하고, 각각의 용례가 쓰여 지는 배경을 파악함과 동시에 조선이 對馬島 倭人 및 女眞 勢力과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파악해 보고자 히였다 ‘자소’는 대부분은 ‘字小以仁’, ‘字小之義’, ‘以大字小’, ‘字小之恩’,‘字小之仁’, ‘字小之心’ 등의 관용구로 내타내며 ‘字小’라는 용어로만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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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모2008한국학연구1920년대 한국의 근대시는 ‘조선으로의 회귀’가 주조를 이루었다. 즉 조선이라는 지역과 조선문학도 근대문학과 세계의 중심이라는 신념이 점차 조선문학 내부에서 득세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의 중심으로서 서양 대 주변으로서 동양, 혹은 조선이라는 이분법에 근간한 로컬리티의 위계나, 이를 통해 형성된 심상지리의 탈구축을, 또한 조선이라는 지역의 재영토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에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