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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가 은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로 곡식을 사들이는 문제를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동낭중(董郞中)이 분부한, 은자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로 곡식을 사들이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거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는 5만여 필에 이를 것이니 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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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석성의 후손인 석한영 ․ 석한준 형제에게 석성의 제사를 지내게 하다.
이때 석한영(石漢英)·석한준(石漢俊) 형제가 있어 스스로 명나라 상서 석성(石星)의 후손이라 하니, 상이 불러서 그 족계를 물었다. 한영 등이 대답하기를,
“신들은 석성의 아우 석규(石奎)의 현손인데, 숭정(崇禎) 갑신년에 규의 아들 석계조(石繼祖)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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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임진왜란 당시 석공의 은혜에 관해 전교하다.
차대가 있었다. 장용영(壯勇營)장용영(壯勇營)조선 후기 국왕의 호위를 맡아보던 숙위소(宿衛所)를 폐지하고 새로운 금위체제(禁衛體制)에 따라 조직·개편한 국왕 호위군대.과 어영청(御營廳)어영청(御營廳)임진왜란 뒤 5위(五衛)에 대체되어 설치된 3군문(三軍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