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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비주 태수 원성의 후실 융선이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 비주(肥州) 전평우진(田平寓鎭) 해주태수(海州太守) 원성(源省)의 후실(後室) 융선(融仙)이 사람을 보내어 토의를 바치고, 이어 예조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우리 부자는 비록 이역에서 났으나, 이웃나라를 공경하는 예의를 다해서 헤마다 태만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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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중국 변장 원진의 일을 아뢰다.
예조가 아뢰기를,
“왜구가 중국 변장 원진(袁璡)을 사로잡아 갔다가 그 뒤에 중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어도 길이 없으므로 을유년 무렵에 우리나라를 통하여 돌려보내려 하였는데 우리나라가 형편이 곤란하였기 때문에 막아버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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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 및 예관 등에게 중국 변장 원진 문제를 의논하게 하다.
상이, 정만종(鄭萬鍾)이 지은 일본국에 답하는 서계를 삼공 및 예관 등에게 내리며 이르기를,
“일본국 서계를 보니 중림(重林)【계미년(1523)에 대명(大明)의 변방에서 도적질을 하였다가 전라도에서 사로잡혀 중국 조정에 포로로 바쳐진 자이다.】등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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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사 등이 중국 변장 원진 문제와 역로의 피폐를 회복시킬 방도를 묻다.
김근사 등이 의논드리기를,
“중조의 변장 원진(袁璡)이 왜에게 사로잡힌 것은 우리나라가 비록 해외에 있기는 하지만 진실로 함께 분개할 일입니다. 왜국에서 우리나라를 통하여 중국에 전주하고자 하였으니, 만일 우리나라에서 중국에 추쇄하여 돌려보냈다면 사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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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중림의 사건으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의논하다.
진하사 서장관(書狀官)【유지선(柳智善).】이 문견한 사건【그 말속에 계묘년에 왜인 중 중림(中林) 등이 중국에 가서 노략질을 하여 영파부지휘사(寧波府指揮使) 원진(元璡)을 잡아갔고, 또 우리나라에서 노략질을 하자 우리나라에서 잡아서 중국에 보냈었는데, 이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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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이 중국인 원진 쇄환 문제에 관해 중국에 알려줄 것을 요청해 오다.
일본국왕의 서계를 내리며 이환(李芄)에게 묻기를,
“여기에 ‘무관 원진(袁璡)이 좋지 못한 때를 만나서.’ 라고 했으니, 중국 사람이 일본에 사로잡혀 갔었는데 중국으로 돌려보내려 하여, 우리나라에서 먼저 고하도록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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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 원의청이 서계를 보내오다.
일본국왕 원의청(源義晴) 서계의 대략에,
“계미년 봄에 대명국에 진공할 때, 폐방의 간사한 무리가 부고의 물품을 노려 방화하고 홍치(弘治)의 감합(勘合)을 도둑질 하였다가 먼 섬으로 귀양갔었는데, 아득한 해양을 건너서 도망하여 영파부(寧波府)에 이르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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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일본국왕의 요청에 관한 대응책을 논의할 것을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어제 왜의 서계를 의정부와 예조가 의당 스스로 의논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각기 의견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나의 의견을 말하겠다. 이번에 일본이 만일 원진(袁璡)을 데리고 왔다면, 이는 왜인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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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서 일본국왕의 요청을 허락하기 어렵다고 아뢰다.
정부가 아뢰기를,
“신 등이 일본국왕의 서계와 전교하신 뜻을 반복해서 고찰하고 생각해보건대, 일본의 뜻이 자기 나라에서 원진(袁璡)을 쇄환한다면 중국에서 노략하여 잡아간 죄를 문책하게 될까 여겨지므로 자기들이 쇄환하지 않고서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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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서계에 쓰인 명나라 사람의 이름을 쇄환되어 온 자들에게 물으니 다르게 나타나다.
삼공이 의논드리기를,
“영파부(寧波府) 사람들을 중국으로 쇄환되게 하는 일은, 성상의 분부가 지당하십니다. 그러나 안 될 점이 있으니, 표류했던 사람들은 모두 미욱하고 용렬하므로 그들의 말을 실지로 여겨 중국에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