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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尹諧 부 윤택尹澤
윤택(尹澤)은 자가 중덕(仲德)으로 세 살 때 부친을 여의었다. 일곱 살 때 배우는 글마다 바로 외우니 그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말을 할 때마다 윤해는 “우리 가문을 일으킬 사람은 바로 너로구나!” 하며 울었다. 조금 자라자 고모부 고모부 윤선좌의 부인이 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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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李瑱
이진(李瑱) 이진(1244~1321)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가 온길(溫吉)이고 처음 이름은 이방연(李芳衍)이다.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서(金書)의 후손으로 조부는 문림랑(文林郞) 상의직장동정 尙衣直長同正 이득견(李得堅)이며, 부친은 좌복야로 추증된 이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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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王煦
왕후(王煦) 왕후(1296~1349)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증조는 한림학사(翰林學士) 권위(權韙)이고, 조부는 권단(權㫜)이다. 부친은 권보(權溥)이고, 모친은 문화 유씨(文化柳氏) 유승(柳陞)의 딸이며, 5남 4녀 중 왕후는 4남이다. 맏형은 권준(權準)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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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尹諧 부 윤택尹澤
澤, 字仲德, 三歲而孤. 七歲, 受書輒成誦, 諧每見警句泣曰, “興吾門者, 其汝乎!” 稍長, 從姑夫尹宣佐讀書淹通, 尤長於左氏春秋. 常誦范文正公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以謂, “大丈夫, 寧可碌碌耶?” 忠肅四年登第, 調京山府司錄, 入爲校勘, 遷檢閱. 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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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李瑱
李瑱, 字溫古, 初名方衍, 慶州人, 三韓功臣金書之後. 少好學, 博通百家, 有能詩聲, 人或試以强韻, 援筆輒賦, 若宿構然. 尙書李松縉, 一見奇之曰, “大器也.” 登第調廣州司錄, 被選直翰林院. 忠烈以詩賦, 親試文臣, 得九人, 瑱居第二. 歷起居中書舍人, 出爲安東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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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王煦
王煦, 初姓名權載, 蒙古名脫歡, 政丞溥子也. 其兄準, 受知忠宣王, 王問其兄弟, 聞載名則喜, 未及見授郞將, 俄遷三司判官. 王在元召之, 一見遂以爲子, 賜姓名王煦係屬籍. 王還國, 出入常同車, 由司僕副正, 轉司憲執義. 忠肅元年, 陞爲三重大匡雞林府院君, 三年, 加府院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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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文閣
예종 11년에 궁중에 청연각(淸燕閣)을 만들어 학사(學士)․직학사(直學士)․직각(直閣)을 각 1명을 선발해 두고 아침저녁으로 경서를 강론하게 했는데, 학사는 종3품으로, 직학사는 종4품으로, 직각은 종6품으로 각각 대우해 주었다. 또 교감(校勘) 4명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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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校寺
경적(經籍)과 축소(祝䟽)에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맡았다 예문관은 사명(詞命)을, 춘추관은 기사(記事)를, 전교시는 경서와 축문에 관한 일을 맡았다는 사실에서 3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당나라에서는 비서성이 경적(經籍)과 도서(圖書)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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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文閣
睿宗十一年, 禁中作淸燕閣, 選置學士․直學士․直閣各一人, 朝夕講論經書. 學士視從三品, 直學士視從四品, 直閣視從六品. 又置校勘四人, 其二以御書院校勘充之, 其二以職事兼之. 尋以淸燕閣在禁內, 學士直宿出入爲難, 就其旁別置閣, 改官號曰寶文. 加置待制, 官班視給舍, 直賜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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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校寺
掌經籍祝䟽. 國初稱內書省, 成宗十四年, 改秘書省, 有監․少監․丞․郞․校書郞․正字. 文宗定, 判事秩正三品【文宗五年, 內史門下省奏, 諸司判事, 本皆權帶, 近皆爲祿官 有違古制, 請改之, 從之.】, 監一人從三品, 少監一人從四品, 丞二人從五品, 郞一人從六品, 校書郞二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