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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를 따라 일본에서 온 중국인 서성을 돌려보낼 것인지를 의논하다.
임금이 글로 승정원(承政院)에 내어 보이기를,
“체찰사 이예(李藝)가 대마도(對馬島)에 도착하자, 중국인(中國人)인 서성(徐成)이란 자가 따라오기를 청하매, 예가 거절하기를, ‘도주(島主)의 말을 듣지 않고 데리고 가는 것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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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원사 이예의 졸기.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이예(李藝)가 졸하였다. 예는 울산군의 아전이었었는데, 홍무(洪武) 병자년 12월에 왜적 비구로고(非舊老古) 등이 3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항복(降服)을 청하거늘, 경상도감사가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 이은(李殷)을 시켜서 관(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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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군 윤인보가 대마도에 은전을 베풀고 일본국왕에게 회례하자고 상서하였다.
상호군(上護軍) 윤인보(尹仁甫)가 글을 올리기를,
“신(臣)이 사신이 되어 일찍이 대마도(對馬島)에 이르니 추장(酋長) 종정성(宗貞盛)과 그 관할 구역의 백성들이 모두 말하기를, ‘의식은 오로지 임금의 은덕을 입게 되었으니, 몸은 일본 땅에 있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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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과의 무역에 대해 대신들과 의논하다.
하연(河演)․황보인(皇甫仁)․박종우(朴從愚)․정분(鄭奔)․정갑손(鄭甲孫)․허후(許詡) 등을 불러 이르기를,
“왜객인(倭客人)의 단목(丹木)·동납(銅蠟)을 서울로 올라오지 말게 하고, 포구(浦口)에 머물러 무역하도록 함이 내 처음부터 법을 세울 뜻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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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형의 글에 일본 ․ 삼포 ․ 유구국의 내정을 적다.
박시형(朴時衡)이 옥중에서 글을 만들어, 그 아우로 하여금 억울함을 호소하게 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 우리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덕화가 흡족하고 인정이 심화하며, 비가 개이고 시절이 순하여, 해마다 풍년이 들고 여러 번 큰 풍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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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에서 생포한 왜적을 용서하지 말 것을 청하다.
승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이양(李良)이 생포한 왜적 두 사람을 도로 포구로 내보내라 하셨는데, 신 등의 생각으로는 지난해에 삼포의 왜인이 혹은 금하는 산의 소나무를 함부로 베어 가기도 하고 혹은 다투어 어량을 빼앗고 관차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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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도 수사가 왜선을 나포한 데 대해 전교하다.
전라좌도 수사【최종호(崔終浩)】의 계본【삼도(三島) 왜포에 왜선 1척이 들어왔는데 온전히 나포하여 머리 4급을 벤 일이다.】과 우도 수사【오흡(吳潝)】의 계본【청등도(靑藤島)에서 왜선 1척을 나포하여 21급을 베었는데 그 나머지는 물에 뛰어들기도 하고 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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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 대신과 영부사가 왜적에 대적하는 일을 의논하여 아뢰다.
비변사 대신과 영부사가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감사에게 하유하기를 ‘지금 각 도에 나누어 정박한 왜선들이 비록 바람 때문에 표류하다 닿은 듯하나, 나타난 곳이 한두 곳이 아니고 육지에 내려와 싸우다가 백성을 살해하기까지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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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경연사 상진이 왜적과 사로잡힌 중국인들의 해송에 관해 아뢰다.
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영경연사 상진(尙震)이 아뢰기를,
“…… 그리고 왜변으로 을묘년에 성이 함락당한 뒤로부터는 사람들이 통분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마땅히 왜적을 보는 대로 사로잡아 살해하여 과거의 수치를 씻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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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항복이 왜적의 침입에 대한 방비책을 논하는 차자를 올리다.
6692. 좌의정 이항복이 왜적의 침입에 대한 방비책을 논하는 차자를 올리다.
좌의정 이항복(李恒福)이 차자로 아뢰었다.
“신은 상심이 누적되어 질병이 되었고 그 질병이 오래되어 고질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