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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병사 권응수가 대구부의 적이 물러갔고 청도의 적은 추격 중이라고 치계하다.
경상좌도병사 권응수(權應銖)가 치계 하였다.
“대구부에 남아 있던 적은 5월 15일에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물러갔고, 그 날 중국군의 선봉 이 총병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구부로 들어갔으며, 청도의 적은 5월 16일에 도망하였는데 평안좌방어사 박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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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 한효순이 당교 ․ 상주 ․ 선산 등지의 왜적이 물러갔다고 치계하다.
경상도관찰사 한효순(韓孝純)이 치계 하였다.
“본 도내에서 문경군 당교(唐橋)의 왜적은 4월 28일에 물러갔고, 상주(尙州)의 적은 5월 10~11일에, 선산(善山)의 적은 12일에, 인동(仁同)의 적은 13일에, 대구(大丘) · 청도(淸道)의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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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 홍이상이 경상도 방어책을 아뢰다.
경상도 관찰사 홍이상(洪履祥)이 장계하기를,
“둔병(屯兵)하여 적을 막는 곳은 아무쪼록 앞뒤로 서로 구원하고 좌우로 협세할 수 있어 적으로 하여금 뒤가 염려되어 공격에 전념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우리에게 있어서도 진퇴와 기각의 형세를 만든 연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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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감사 김시헌이 군사를 뽑고 전마를 징발하는 일에 관해 서장을 올리다.
충청감사 김시헌(金時獻)이 서장을 올리기를,
“난리를 겪은 뒤로 인민들이 죽거나 옮겨가서 백성이 희소한 것이 각도마다 다 그러합니다. 그런데 본도에는 얼마되지 않는 인정(人丁)마저 찬획사의 포·살수·선봉군으로 다 뽑혔으며, 연해에 사는 백성들은 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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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 이용순이 공생 박계생이 포로가 된 경위와 적중의 형세를 보고하다.
경상도관찰사 이용순(李用淳)의 서장에,
“행장(行長)의 부장 섭호(攝號)와 우리나라에서 사로잡혀 간 사람 이문욱(李文彧)이 함께 사로잡혀 간 사람 청도(淸道)의 공생 박계생(朴啓生)이라는 자를 시켜 비밀 편지를 보내왔기에, 그가 사로잡혀 간 경위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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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중영장 김응서가 경산 ․ 청도 전투시 중국군이 도와주지 않았음을 치계하다.
경상도 중영장 김응서(金應瑞)가 치계하였다.
“사천(泗川)에 머물러 주둔하고 있던 적 천여 명이 경산(慶山)과 청도(淸道)의 지역으로 나눠 들어가 노략질을 자행하기에 신이 권응수(權應銖)·한명련(韓明璉) 등과 합세하여 서로 접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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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찰사 이덕형과 국방 문제 전반에 대해 논의하다.
진시에 상이 별진에 나아가 겸사도도체찰사 이덕형(李德馨)과 부사 한준겸(韓浚謙)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경상도로 내려가는가?”
하니, 이덕형이 아뢰기를,
“새재[鳥嶺]길로 내려가 감사와 수령들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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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과 영남의 성읍을 수축하다.
호남·영남의 성읍을 수축하였다. 비변사가, 왜적은 수전에 강하지만 육지에 오르면 불리하다는 것으로 오로지 육지의 방어에 힘쓰기를 청하니, 이에 호남·영남의 큰 읍성을 증축하고 수리하게 하였다. 그런데 경상 감사 김수(金睟)는 더욱 힘을 다해 봉행하여 축성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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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3일 왜적이 경성에 침입하자 이양원 ․ 김명원이퇴주하다.
이달 3일에 왜적이 경성에 침입하자 이양원(李陽元)·김명원(金命元)이 퇴주하였다. 당초 적은 동래에서 세 길로 나누어 진격하였다. 한 길은 중도로 양산(梁山)·밀양(密陽)·청도(淸道)·대구(大丘)·인동(仁同)·선산(善山)을 경유하여 상주(尙州)에 이르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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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면동이 왜적에 대비한 행군법, 무기 등에 대해 폐단과 대비책 등을 상소하다.
“…… 수전의 제도에 이르러서는 육군으로서 군포를 바치는 군사들이 바닷가에 많이 있고 전선의 노를 잘 젓는 군사들은 도리어 산읍에 있는데, 영남이 더욱 심합니다. 만일 뜻밖의 변이 순식간에 박두한다면, 5~6백 리 밖에 있던 노를 잘 젓는 군사들이 어떻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