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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회가 왜적의 진주 공격을 알리는 심유경의 전첩 내용을 보고하다.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가 치계하였다.
“신은 황진(黃進) 등과 더불어 물러나서 진주를 지키고 있고, 권율(權慄) 등은 물러나서 의령(宜寧)을 지키고 있습니다. 19일 박진(朴晋) 등의 비밀 전통에 의하면, 장파총(張把摠)에게서 받은 심유격(沈遊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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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함락된 진주성 싸움의 자세한 경과.
당초에 적추(賊酋)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제추의 군대를 합치면 30만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자는 7~8만 명이라고 하였다. 왜적이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려 할 때 총병(總兵) 유정(劉綎)은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과 함께 대구(大丘)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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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의 군관 조덕수 ․ 박정호에게 통신사의 동태에 관해 아뢰게 하다.
사시 초에 상이 황신(黃愼)의 군관 조덕수(趙德秀)·박정호(朴挺豪) 등을 별전에서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중에서 들은 것이 어떠한가? 죄다 말하라.”
하니, 조덕수가 아뢰기를,
“배신이 들어갈 때에 관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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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신이 병부에 동봉에 관한 게첩을 보내다.
중국 사신이 병부에 보낸 게첩은 다음과 같다.
“책봉일본정사등관오군영등아문서도독첨사(冊封日本正使等官五軍營等衙門署都督僉使) 양(楊) 등이 동봉(東封)을 완보하는 일입니다. 본직이 본년 6월 15일에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것은 이미 본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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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황신을 인견하고 일본의 사정을 듣다.
신시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황신(黃愼)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대는 나라의 일로 외국에 왕래하느라 노고가 많았다.”
하니, 황신이 아뢰기를,
“사신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왕명을 바로 전달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