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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윤 김하가 북경에 가지고 간 징병 면제를 주청하는 표문.
한성부윤 김하(金何)를 보내어 북경에 가서 칙유(勅諭)를 사례하게 하고, 인하여 징병(徵兵)을 면해 주기를 주청하게 하였다. …… 그 주본(奏本)에 이르기를,
“생각하건대, 성상께서 적은 나라를 연민히 여기사, 오랑캐의 실정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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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축전주 대마주에서 토물을 바치다.
축전(筑前)·대마 두 주의 수호대관신(守護代官臣) 종삼랑무가(宗三郞茂家)가 사람을 보내어 토물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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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에 갇힌 왜인의 처리 문제가 분분하자 남방 평정 뒤에 결정하기로 하다.
의금부에 갇혀 있는 왜인 10명 중에 5인은 일본국 사람이라 자칭하고 5인은 대마도 사람이라 칭하였으며, 그 공초한 것도 모두 반란을 꾸민 사유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상이 이것을 여러 재상에게 보이고, 이어서 정부·육조판서·한성 판윤 이상으로 의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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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제가 조서를 보내오다.
6561. 중국 황제가 조서를 보내오다.
등황한 조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봉천승운황제(奉天承運皇帝)는 조한다. 막중한 대통을 이어 억조창생을 다스리니 바닷가나 산골이나 모두 나의 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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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에 있던 조헌이 일본의 서계에 분개하여 침략에 대비할 것을 아뢴 소장과 첩황 ①.
전 교수 조헌(趙憲)이 소장을 올렸으나 답이 없었다. 조헌이 일본의 서계가 패역스럽고 왜사도 함께 나왔다는 말을 듣고서 옥천(沃川)에서 백의로 걸어와서 예궐하여 소장을 올렸는데 그 내용에,
“신은 생각건대, 선비는 자신의 말의 쓰여지지 않으면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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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 사람 허의후가 왜국이 명을 칠 것이라는 소식을 절성에 투서하다.
허의후(許儀後)는 복건(福建) 사람이다. 포로가 되어 왜국 살마주(薩摩州)에 끌려 갔다가 수장의 총애를 받고 국중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때 그는 관백이 장차 입구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와 친분이 있는 주균왕(朱均旺)을 은밀히 보내어 절성(浙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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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피로인을 쇄환하는 왜에 대한 상직은 중국의 처분에 따라야 한다고 행이하도록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임진년 이후에 왜노가 여러 차례 승리한 기세를 끼고 강화를 요구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쇠약함이 쌓인 나머지 여러 해 동안 의심하면서 미루어 왔습니다. 이는 강화를 허락하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대개 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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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지를 회례사로 일본 육주목에 보내다.
일본국 육주목(六州牧) 의홍(義弘)의 사자 영범(永範)·영확(永廓)이 돌아가니, 임금이 전 비서감 박돈지(朴惇之)를 회례사(回禮使)로 삼아 보냈다. 도당(都堂)에서 의홍(義弘)에게 회답하는 글의 대강은 이러하였다.
“편지에 말한 대상국(大相國)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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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의 조하에 일본 사자 등도 참예하다.
임금이 면복차림으로 군신을 거느리고 중국 황제의 정조(正朝)를 하례하고, 근정전(勤政殿)에 나앉아 백관의 조하를 받았다. 여러 도의 군민관이 각각 방물을 바치고, 오도리(吾都里)의 오랑합(吾郞哈) 만호가 또한 방물을 바쳤다. 예가 끝나매 군신에게 잔치를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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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상국 ․ 내내전 등이 보낸 사인이 돌아가다.
일본 대상국(大相國)·대내전(大內殿)·일기도(一岐島) 지좌전(志佐殿)·대마(對馬) 종조종부랑(宗鳥宗府郞) 등의 사인이 돌아간다고 고하니, 각각 물건을 내려 주기를 바친 것보다 후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