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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절사와 함께 왜에게 잡혀갔던 한인을 요동으로 보내게 하다.
왕이 곤룡포와 면류관 차림으로 세자 이하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성절을 축하하는 표문에 절하고, 진하사 판좌군도총제부사 맹사성(孟思誠)에게 옷과 갓과 신을 하사하고, 통사 첨지사역원사(僉知司譯院事) 조충좌(趙忠佐)를 시켜 왜에게 포로 되었던 한인 이삼관(李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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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 목장을 쌓는 것에 대해서 논의하다.
경기감사가 강화(江華)의 목장을 쌓는 군사의 수효와 기일에 대하여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일에 판부사 최윤덕(崔閏德)이 친히 살펴보고 와서 계하기를, ‘강화에는 물과 풀이 많고 좋으므로 그곳에 사는 백성을 다른 고을로 이사시키고, 말 먹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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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순위량의 병선 정박지 선정에 대해 의논하다.
황해도 순위량(巡威梁)의 선군들이 상언하기를,
“본량(本梁)의 병선은 처음에는 해주(海州)의 추관(槌串)에 정박하여 매우 편리하였었는데 을사년에 무지관(無知串)으로 옮겼습니다. 본관(本串)은 땅이 모두 모래와 돌이며 또 사면으로 바람을 받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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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인한 문제를 신하들과 의논하다.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 신하에게 이르기를,
“일본국이 그 왕이 훙하였는데도 사신을 보내어 부고하지 않고, 즉위함에 미쳐서도 또 사신을 보내어 수호의 뜻을 통해 오지도 않았으니, 우리나라도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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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재소이 등이 예조에 글을 보내 미곡과 저포 등을 내려줄 것을 간청하다.
태재소이(太宰小二)와 소법사와(小法師瓦)가 예조에 글을 보내기를,
“지난해 겨울부터 대마주에 와서 우거하고 있사오니 보호 구제해 주시기를 원하오며, 또 경도(京都)에 예물을 보내고자 하오니, 비옵건대, 면주 혹은 저포 1천 필과 미곡을 하사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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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에 명을 내려 박호문 등을 국문케 하라고 하다.
이조에 명을 내리어,
“다시 김흡(金洽)을 제주안무사(濟州安撫使)에 임명하고, 소윤(少尹) 박호문(朴好問)·판관 이줄(李茁)을 형조에 내려 국문하라.”
하였다. 호문이 제주에서 돌아와서 병조에 보고하기를,
“제가 그 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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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 허조 ․ 신상 ․ 정초 ․ 황보인 등으로 하여금 도서에 관한 일을 의논케 하다.
우의정 맹사성(孟思誠)․찬성 허조(許稠)․예조판서 신상(申商)․이조참판 정초(鄭招)․예문관제학 윤회(尹淮)․전 총제(摠制) 신장(申檣)․예조참의 이긍(李兢)을 불러 지신사 황보인(皇甫仁)으로 하여금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 두번째 의제에 이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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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 정초 등과 무례한 일본 사절에 대한 답례에 관해논의하다.
조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전에 일본이 우리에게 사절을 통해 왔기에 송희경(宋希璟)을 회례사로 보냈더니, 왜인들은 우리나라가 중국을 극진히 섬기고 있어 반드시 엿보러 왔다고 생각하고 몹시 박하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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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징에게 서계가 없이 구두로 청한 까닭에 50석만 주게하다.
승문원 제조 우의정 맹사성․찬성 허조․제학 윤회․동지총제 신장 등이 논의하여 아뢰기를,
“전일에 논의하여 종정징에게 하사하게 한 쌀과 콩 100석은 우선 50석만 주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공조 판서 정초가 아뢰기를,
“다만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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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좌무위의 사인을 인견할 시기에 관해 논의하다.
전지하기를,
“오는 초하루 조하(朝賀) 때에 좌무위(左武衛)의 사인을 보려고 하는데, 만약 비가 와서 조하를 받지 못하면 두 번 예궐하여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옳지 못한 일이 아닌가. 태종께서 일찍이 대내전의 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