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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왜영에서 돌아온 양빈의 품첩을 등서하여 그 내용을 아뢰다.
접대도감이 아뢰기를,
“어제 왜영에서 돌아온 양빈(楊賓)이 문견한 내용으로 품첩을 만들어 사신에게 바쳤으므로 그 첩을 등서하여 올립니다.”
하였는데, 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각영의 왜병 수목은, 두모포(豆毛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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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왜영의 형세에 대해 보고하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오늘 아침 장만록(張萬祿)이 들어왔기에 남호정(南好正) 등을 시켜 왜영에서 보고 들은 정확한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호정이 장만록과 왜영의 지도를 내놓고 가리키며 물어보자, 만록이 말하기를 ‘처음에 웅천(熊川)에 이르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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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주부 김경상이 양산 ․ 덕도 ․ 부산의 적세를 탐심하여 서계를 올리다.
훈련주부 김경상(金景祥)이 서계하였다.
“13일에 황신(黃愼)과 양산(梁山) 땅 용당(龍塘)으로 나아가 적세를 탐심 했더니, 동진(同陣)은 이미 불타 철거되고 우리나라 사람이 밭을 만들었는데 밀이 무성하였으며, 북쪽에 인가 네 채가 있었는데, 복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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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리가 이남으로 군사를 보내고 올린 자문.
양경리(楊経理)가 이남으로 군사를 나누어 보내고 이자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 압록강 이서를 나누어 주제독(周提督)에게 맡기고 전라도와 서해 이남을 진총병(陳總兵)에게 맡기되 동서의 수병이 서로 기다리고 있지 말고 성세를 연락하여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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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태수 풍신의지가 강화를 청하는 글을 보내다.
대마도태수(対馬島太守)가 보내온 글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日本國) 대마주태수(對馬州太守) 풍신의지(豊臣義智)는 조선국예조대인각하(朝鮮國禮曹大人閣下)께 두려운 마음으로 삼가 아룁니다. 무술년·기해년·경자년에 천조의 노야들이 보낸 네 사람의 차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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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태수 풍신의지가 강화를 청하는 글을 보내오다.
6723. 대마도 태수 풍신의지가 강화를 청하는 글을 보내오다.
대마주태수(對馬州太守)가 보내온 서신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대마주태수 풍신의지(豊臣義智)는 조선국 예조 대인 합하께 삼가 아룁니다. 무술년·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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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육주자사 다다량의홍이 글을 보내다.
일본의 육주자사(六州刺使) 다다량조신(多多良朝臣) 의홍(義弘)이 사자를 보내어 도당에 글을 바쳤는데, 그 대강은 이러하였다.
“바다와 산이 험하고 막혀서 목을 늘이고 바랄 뿐이더니, 이제 행인(行人) 통축(通竺) 등이 와서 존후(尊侯)의 동지(動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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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주목 의홍이 토물을 바치다.
일본국 육주목(六州牧) 의홍(義弘)이 중 영범(永範)·영확(永廓)을 보내어 와서 토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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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지를 회례사로 일본 육주목에 보내다.
일본국 육주목(六州牧) 의홍(義弘)의 사자 영범(永範)·영확(永廓)이 돌아가니, 임금이 전 비서감 박돈지(朴惇之)를 회례사(回禮使)로 삼아 보냈다. 도당(都堂)에서 의홍(義弘)에게 회답하는 글의 대강은 이러하였다.
“편지에 말한 대상국(大相國)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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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관 박돈지가 일본에서 피로남녀 100여인 데리고 돌아오다.
통신관(通信官) 박돈지(朴惇之)가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일본국 대장군(大將軍)이 사신을 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치고 피로되었던 남녀 100여 인을 돌려보내었다. 임금이 정전에 나아가서 이를 인견하고, 명하여 4품의 반차에 서서 예를 행하도록 하였다. 대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