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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판한성부사 최용소의 졸기.
전판한성부사(前判漢城府事) 최용소(崔龍蘇)가 졸하였다. 용소는 강화 사람이니, 처음에 의릉(毅陵)의 능지기에 임명되었다가, 여러 번 벼슬을 옮겨 감찰규정(監察糾正)에 이르러 계림판관(鷄林判官)을 제수하였다. 사람됨이 청렴하고 근신하고 강개하여 치정이 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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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총관 원도진이 서신을 보내 종을 청구하고, 준주 태수 원성이 예물을 바치다.
일본국의 전구주총관(前九州摠管) 원도진(源道鎭)이 예조에 서신을 보내어 피로인을 돌려준 데 대하여 사례하고 겸해 사종(寺鍾)을 청구하였다. 인하여 유황 5,000근, 단목 500근, 감초 50근, 서각(犀角) 2본, 화자주기(花磁酒器) 2개, 상아로 만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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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의 사신 규주 ․ 범령 등 135명이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왕의 사신 규주(圭籌)․범령(梵齡)과 도선주(都船主) 구준(久俊) 등 135인이 대궐에 나아가서 토의를 바치니,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서 예를 받은 뒤에, 규주와 범령은 대궐 안에 들어오도록 명하고, 구준은 대궐 밖에 있도록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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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좌위문대랑이 피로인 1명을 돌려 보내다.
대마도 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이 사람을 보내어 피로인 1명을 돌려보내고 이내 방물을 바치니, 면포를 회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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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이 붕중을 시켜 화친을 청하게 하다.
일본국왕이 대마도주에게 신칙하여 경오년 반란 때의 왜적(倭賊)을 베어, 붕중(弸中)을 시켜 머리를 함에 담아 와서 바치고 화친을 청하게 하였다. 처음에 홍문관(弘文館)이 상소하기를,
“웅천(熊川) 제포(薺浦)의 치욕을 아직 통쾌하게 씻지 못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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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에서 붕중과 성친의 일을 논의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 지사 김응기(金應箕)가 아뢰기를, ……
또 아뢰기를,
“붕중(弸中)이 온 지가 오랜데, 지금 조정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으니, 그를 접대할 때에 응대할 말을 미리 정하여야 하겠습니다. 성친(盛親)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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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연관 우의정 성희안 등이 붕중의 화친에 대해 의견을 말하다.
압연관(押宴官) 우의정 성희안·예조판서 신용개(申用漑)·참판 황맹헌(黃孟獻)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이 잔치를 대접할 때에 전교하신 분부에 따라 ‘화친을 허락할 수 없다.' 는 뜻으로 타일렀더니, 붕중(弸中)이 말하기를 ‘만일 화친을 허락하지 않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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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연관 송일 등이 잔치에서 붕중 등이 한 말을 전하다.
압연관(押宴官) 송일(宋軼)·예조판서 신용개(申用漑)·참판 황맹헌(黃孟獻) 등이 아뢰기를,
“어제 처음 잔치가 시작되자 먼저 선온을 내리고서 ‘상께서 한재를 당하여 친히 접견하지 못한다.’ 는 뜻을 전달하니, 붕중(弸中) 등의 하는 말이 한 가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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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정 성희안 등이 붕중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와서 대책을 의논하다.
우의정 성희안·예조판서 신용개(申用漑) 등이 붕중의 서계를 가지고 입계하기를,
“붕중이 ‘자기는 객관에 머무르고, 도선주(都船主)를 대마도에 보내어 종성친(宗盛親)으로 하여금 와서 사죄하게 한 뒤에 화친을 청하겠다.’ 고 하니, 이는 나라의 위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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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에 쇄환사를 겸칭하도록 명하다.
회답사에 쇄환사를 겸칭하도록 명하였다. 여우길(呂祐吉) 등이 떠난 후에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전후 성교를 보건대 사신의 행차에 우리나라 피로인들을 모두 쇄환코자 한다 하였습니다. 무릇 이를 보고 듣는 자로서 누군들 감격치 않겠습니까. 구구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