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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가 건의한 임국로 ․ 유사원 ․ 남충원의 인사문제를 재가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라감사 임국로(任國老)는 몸에 중병이 있어서 보행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 남쪽 지방은 다사 다난하여 아침 저녁으로 변이 일어날 것 같은 위급한 시기이니, 방백의 자리를 오래 비워 두는 것은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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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게 사로잡힌 남충원과 신택의 가족을 구출해 보도록 지시하다.
비망기로 일렀다.
“경의 서계를 보니, 남충원(南忠元)의【대원군(大院君)의 서사위[庶壻]이다.】온 가족이 왜적에게 사로잡혔다 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경은 자취를 드러내지 말고 편의에 따라 정탐하되, 만약 사실대로 사로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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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 잡혀 있는 남충원의 처가 죽자 장례를 돕게 하다.
6552. 왜에 잡혀 있는 남충원의 처가 죽자 장례를 돕게 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남충원(南忠元)의【정유년 가을의 적변에 청양현감으로 있다가 납치당하여 지금 일본에 있다.】처가【금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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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강사준과 여진덕 등이 일본의 내란 상황을 보고하다.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쳐 돌아온 하동의 교생 강사준(姜士俊)과 여진덕(余進德) 등의 초사는 다음과 같다.
“대체로 적정은 병신년부터 천재가 자주 있고 지진이 너무 심하여 공사의 가옥이 무수히 파괴되었고, 심지어는 산릉과 천택이 이동하고 균열되어 압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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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체찰사 이덕형이 왜인 10명이 일본국의 강화문서를 가지고 왔다고 알리다.
왜인 10명이 일본국의 강화문서 2건과 우리나라 사람으로 포로가 된 남녀 250명 및 전 현감 남충원(南忠元)을【남충원은 상의 얼매부(孼妹夫)인데 정유년에 포로가 되었다.】데리고 3척의 배를 타고 와 부산에 정박하였다고 사도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이 치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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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체찰사 이덕형이 왜적의 일에 대처할 방안에 대해 아뢰다.
전에 내족 남충원(南忠元)이 남쪽 지방의 수령으로 나갔다가 정유재란 때 적의 포로가 되었었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평조신(平調信)·정성(正成)·평의지(平義智) 등이 사신을 보내면서 남충원 및 포로된 남녀 2백여 명을 함께 보내와 예조에 글을 보내 강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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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강화를 청한 문제에 대해 이헌국 ․ 최흥원 ․ 김명원 등이 의논한 바를 아뢰다.
왜적이 강화를 청한 문제로 대신 및 2품 이상의 관원이 의논드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헌국(李憲國)은 의논드리기를,
“난리 뒤에 강화를 청한 것은 일본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 및 평조신(平調信) 등이 수백년 이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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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찰사 이덕형이 왜적과 관계된 부산 지역의 일을 알리다.
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의 장계에,
“다대포 포수 김걸(金乞)이 진고하기를 ‘남충원(南忠元)이 왜사에게 말하기를 「내지에는 중국 군사의 유무를 알 수 없으나 부산(釜山)에는 있지 않으니, 너희들이 강화하는 일은 어렵지 않겠다.」 고 하였다.’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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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찰사 이덕형이 임진년에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박언황을 올려보내다.
경성 사람 박언황(朴彦璜)이 임진년에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들어갔다가 이때에 이르러 남충원(南忠元)과 함께 나왔다. 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이 그가 적의 정세를 자못 안다고 하여 특별히 올려보냈는데, 언황이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소(玄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