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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사가 왜적 18척이 흥양에 침범하였는데 녹도권관 이대원이 전사했다고 보고하다.
전라감사가 왜적선 18척이 흥양(興陽) 지경을 침범하였는데 녹도권관(鹿島權管) 이대원(李大源)이 전사했다고 치계한 것을 입계하니, 우윤 신입(申砬)을 방어사로 삼아 군관 30명을 거느리고 그날로 나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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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군사를 잃은 좌수사 심암, 복병선을 잃은 우수사 원호의 국문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좌수사 심암(沈巖)은 이대원(李大源) 등이 전몰할 때 관망하며 진격하지 않아 모두 함몰되어 군사를 잃어 나라를 수치스럽게 만들었고, 우수사 원호(元壕)는 복병선 5척이 피침하였으나 따라가 잡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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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절한 이대원의 집안에 물품을 내리라는 비망기.
비망기를 내렸다.
“전번에 유사가 이대원(李大源)이 사절했기에 증작하는 문제를 공사로 만들어 입계하였다. 나는 생각하건대, 가령 사절했더라도 증작하는 일은 사체가 가볍지 않아서 함부로 시행할 수 없다고 여긴다. 우리나라는 인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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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이대원의 가족 상황을 아뢰다.
상이 이대원(李大源)이 국사로 죽었기에 그의 절의를 장려하려고 그의 부모가 있는지와 아들의 나이는 많은가를 물었는데, 정원이 그의 편모가 수원부에 살고 있으며 자녀의 나이는 몇 살이라고 대답하니, 전교하였다.
“국가가 일반 노인에게도 매달 주육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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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부가 전라감사 한준이이 왜적의 형세를 보고 도망갔다며 파직을 청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라감사 한준(韓準)은 이대원(李大源)이 패하여 죽었을 당시 순천에 도착하여 적의 형세가 왕성하다는 말을 듣고 내지로 급히 돌아갔습니다. 그때 노약자들이 길을 막고 붙들면서 호소했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벌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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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이 이순신의 사당을 세우는 일에 관해 아뢰다.
6401. 홍문관이 이순신의 사당을 세우는 일에 관해 아뢰다.
홍문관이 아뢰기를,
“이순신(李舜臣)의 사당을 세우는 일에 관하여 전례를 고찰한 다음 아뢸 것을 전교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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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찰사 이덕형과 국방 문제 전반에 대해 논의하다.
진시에 상이 별진에 나아가 겸사도도체찰사 이덕형(李德馨)과 부사 한준겸(韓浚謙)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경상도로 내려가는가?”
하니, 이덕형이 아뢰기를,
“새재[鳥嶺]길로 내려가 감사와 수령들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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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에 침구한 왜선을 녹도보장 이대원이 막아 싸우다 패하여 죽다.
왜선이 흥양(興陽)에 침구하였는데, 녹도보장(鹿島堡將) 이대원(李大元)이 막아 싸우다가 패하여 죽었다.
이에 앞서 왜선 수척이 녹도 근처에 침범하자 이대원이 미처 주장에게 보고하지도 않은 채 그들을 쳐서 수급을 벤 일이 있었는데, 수사 심암(沈巖)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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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집청이 정발이 송상현과 함께 왜적에게 죽었으므로 충신의 대열에 수록할 것을 아뢰다.
찬집청(撰集廳)찬집청(撰集廳)조선시대에 문헌․자료의 찬집을 위하여 설치한 임시관청.이 아뢰기를,
“김천일(金千鎰) 등을 충신의 대열에 수록하라는 하교가 있었는데 ‘이대원(李大元) · 이순신(李舜臣)·원균(元均) · 이억기(李億祺)·최호(崔湖) ·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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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전사한 전 녹도만호 이대원이 살았던 마을에 정문을 세우도록 명하다.
고 만호 이대원(李大源)이 살았던 마을에 정문을 세우라고 명하였다. 만력 정해년에 왜적이 전라도를 노략질하였다. 이때에 대원이 녹도만호였는데, 고단한 군대를 이끌고 힘을 다해 싸우다가 지원군이 없어서 패하여 죽으니, 나라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이때에 이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