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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과 유사당상을 인견하여 권율이 왜군을 바로 공격하려고 하는 것 등을 논하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대신과 비변사 유사당상을 인견하였는데, 영부사 심수경(沈守慶),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병조참판 심충겸(沈忠謙), 우부승지 이광정(李光庭), 주서 홍준(洪遵), 봉교 김용(金涌), 대교 심흔(沈忻)이 입시하였다. 상이 권율(權慄)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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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성룡이 경상도에서 응당 행해야 할 일에 대해 차자를 올리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경상도에서 응당 행해야 할 알맞은 일에 대해 올린 차자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자고로 병란 때에는 먼저 영책을 설치하여 요새지로 삼아서 군사와 백성, 그리고 노약자들이 그곳에 의지하여 몸을 보전하게 하고, 공물이건 사물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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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이 김응서 ․ 양연 등의 전공을 아뢰고 상주기를 청하다.
권율(權慄)이 장계하기를,
“입공자효(立功自效)입공자효(立功自效)공을 세워 속죄하는 것.의 처분을 받은 김응서(金應瑞)의 치보 내에 ‘함안(咸安)에 주둔한 적을 밤에 무찌른 뒤에 원수의 전령에 의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장차 운봉(雲峯)으로 향하려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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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장이 진주를 공격하니, 원수가 관군과 의병에게 방비하게 하다.
왜장이 군사를 연합하여 진주를 공격하였다.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등이 성에 들어가서 굳게 지키니, 청정(淸正)·평의지(平義智)가 군사를 다 동원하여 진주로 향했는데 30만으로 일컬었다. 송경략(宋經略)이 심유경(沈惟敬)에게 서신을 보내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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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진주를 함락시키자 김천일 ․ 최경회 등이 전사하다.
왜적이 진주를 함락시켰다.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 등이 전사하였다.
당시 진주에서 급변을 보고하니, 이여송(李如松)이 경성에서 열둔의 제장인 유정(劉綎)·오유충(吳惟忠)·낙상지(駱尙志) 등에게 전령하여 군사를 전진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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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임진왜란 때 노추가 구원하려 한 것, 곽재우가 왜적을 물리친 공에 대해 아뢰다.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차자를 올렸다.
“엎드려 아룁니다. 이번에 선래통사(先來通事)가 가지고 온 사신의 장계 중에, ‘노추가 배를 건조하여 우리나라를 도모하려 한다.’ 라는 말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뒷날에 가서 발생될 것인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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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정민수와 정응 등에 대하여 추증의 은전을 명하다.
함평의 고 참봉 정민수(鄭民秀)와 그의 삼촌인 주부 정응(鄭鷹)·주부 정홍(鄭鴻)과 그의 삼종제인 학생 정회(鄭繪)·첨정 정진(鄭縉)의 한집안의 다섯 충신에게 추증의 은전을 시행하라고 명하였으니, 유생의 상언으로 인하여 예조에서 복계한 까닭이었다. 정민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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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서침을 틈타 적의 소굴을 무찌르는 일로 경략에게 자문을 보내다.
“조선국왕이 적이 서침하는 틈을 타서 적의 소굴을 무찌르겠다는 일입니다.
이 달 7일에 받은 제도순찰사 김명원(金命元)의 치계에 의하면 울산군수(蔚山郡守) 김태허(金太虛)의 비보에 ‘도회군(逃回軍) 황말춘(黃末春)이 금년 4월 23일 포로가 되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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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원부원군 유성룡이 진주성 싸움의 패전 원인을 보고하다.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진주의 함락이 비록 강대한 적병 때문이기는 하지만 우리 쪽 대응의 잘못도 개탄스럽습니다. 신이 서울에 있을 적에 목사(牧使) 서예원(徐禮元)이 명군지대차사원(明軍支待差使員)으로 함창(咸昌)에 와서 있기에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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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체찰사 유성룡이 왜적에 대한 방비책을 보고하다.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기를,
“흉적이 동래(東萊)·부산(釜山)을 소굴로 삼고, 울산(蔚山)·기장(機張)·김해(金海)·창원(昌原)을 머리와 꼬리로 삼고, 양산(梁山) · 밀양(密陽)을 허리와 등으로 삼고 있으면서, 아군과 중국군이 저쪽을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