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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이 치계 하였다.
“신은 죄가 만 번 죽어도 마땅한데 특별히 천지 같은 재생의 은혜를 입어 형벌을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초유의 책임을 맡겨주시니, 신은 명을 받고 감격하여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면서 이 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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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관찰사 황신이 적정과 승전보, 패주 수령의 처리 등을 아뢰다.
전라도관찰사 황신(黃愼)이 치계하였다.
“운봉현감(雲峯縣監) 남간(南侃)의 치보에 ‘현감이 단기(單騎)로 황산(荒山)의 비전(碑殿) 앞길을 지나던 중 갑자기 흉적 40여 명을 만나 진퇴양난이 되었는데, 자신을 생각치 않고 활을 쏘아 두 명의 왜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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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도감이 이순신 ․ 권응수 ․ 정기룡 등 전공이 있는 이들을 취품하다.
공신도감이 아뢰기를,
“우리나라의 장사가 전진의 노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드러나게 적을 격파한 자를 찾는다면, 세력이 상대가 안 되어 양을 몰아다가 호랑이를 공격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것은 참으로 성교와 같았습니다.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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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사 고경명이 군사를 일으키다.
전 부사 고경명(高敬命)은 광주(光州)에 살다가 적이 경성에 침입하였다는 사실을 듣고, 학유(學諭) 유팽로(柳彭老)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적을 토벌할 것을 도모하고 글을 지어 도내의 백성들에게 효유하기를,
“지난번 본도의 근왕병이 금강(錦江)에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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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면동이 왜적에 대비한 행군법, 무기 등에 대해 폐단과 대비책 등을 상소하다.
“…… 수전의 제도에 이르러서는 육군으로서 군포를 바치는 군사들이 바닷가에 많이 있고 전선의 노를 잘 젓는 군사들은 도리어 산읍에 있는데, 영남이 더욱 심합니다. 만일 뜻밖의 변이 순식간에 박두한다면, 5~6백 리 밖에 있던 노를 잘 젓는 군사들이 어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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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암행어사 김이성이 왜공을 상납할 때의 잡비의 과다지출 등에 대해 아뢰다.
삼남암행어사(三南暗行御史) 김이성(金履成)이 복명하였다. 서계를 바쳐 창원부사(昌原府使) 이동식(李東植)·김해부사(金海府使) 민영철(閔永喆)·단양군수(丹陽郡守) 조시순(趙時淳)·광양현감(光陽縣監) 강침(姜忱)·회덕현감(懷德縣監) 이상기(李尙琦)의 법을 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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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황산도 역민이 상언한 것은 위전과 복호를 보태어 달라는 것이라고 아뢰다.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황산도의 역민이 폐막을 상언한 것은 그 하나가 왜관이 부산에 옮겨 설치된 뒤로 황산에서 큰 길을 전담하므로 번다한 역과 참이 끊길 걱정이 눈앞에 닥쳤으니 위전과 복호를 다시 구획하여 보태어 달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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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응창에게 자문을 보내 왜적의 소굴을 공격하자고 청하다.
송경략(宋經略)에게 이자하였는데, 대략은 다음과 같다.
“경상우도 관찰사 김늑(金玏)의 치보에 따르면, 부산 연해에 있던 왜적들이 합세 북상하여 함안(咸安)을 공격, 함락하고 진을 쳤는데 그 수는 기억할 수 없으나, 형세가 매우 창궐하다 합니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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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서침을 틈타 적의 소굴을 무찌르는 일로 경략에게 자문을 보내다.
“조선국왕이 적이 서침하는 틈을 타서 적의 소굴을 무찌르겠다는 일입니다.
이 달 7일에 받은 제도순찰사 김명원(金命元)의 치계에 의하면 울산군수(蔚山郡守) 김태허(金太虛)의 비보에 ‘도회군(逃回軍) 황말춘(黃末春)이 금년 4월 23일 포로가 되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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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 500척이 진포에 침입하자 태조가 왜장 아기발도를 죽이다.
신우(辛禑) 6년(1380) 경신 8월, 왜적의 배 500 척이 진포(鎭浦)에 배를 매어 두고 하삼도(下三道)에 들어와 침구하여 연해의 주군(州郡)을 도륙하고 불살라서 거의 다 없어지고,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은 것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시체가 산과...